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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모세의 중보기도

by manga0713 2022. 4. 15.

[ 샤갈 : 모세 ]

 

 

본문말씀 : 출애굽기 32장 30-35절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가 될까 하노라 하고 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34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35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이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 모세의 중보기도 >

 

모세는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으로 인해 진노한 채 진 문에 서서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라고 했다. 그러자 우상숭배 의식에 불참했던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갔다. 그들에게 모세가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우상숭배에 동참했던 사람들을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불문하고 죽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날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주도하던 삼천 명 가량이 죽었다.

 당시 레위인들은 서릿발 같았다. 가족이라고 슬쩍 눈감아주지 않았고 정 때문에 정의를 잃지 않았다. 그런 추상같은 레위인들의 모습을 하나님께 헌신한 것으로 여겨 하나님이 복을 내리실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처럼 죄를 끊어내고 죄인을 끊어내는 결단이 있어야 복이 주어진다. 무조건 감싸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잘라내야 할 것은 잘라내는 것이 진짜 사랑에 가까울 때가 많다.

 우상숭배자들을 죽인 다음 날 모세는 백성들을 위한 대속 제사를 드리러 산으로 가서 백성들을 위해 중보기도를 했다. “하나님! 정말 슬픕니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해 금 신을 만들어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의 죄를 사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주님이 기록하신 책에서 저의 이름을 지워주소서(31-32절).” 책임회피에 급급했던 아론과 달리 모세는 동족을 위해 생명까지 내놓을 만큼 투철한 책임 의식과 동포사랑의 정신을 가졌다.

 그 중보기도를 받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를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모세는 백성들 대신에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범죄자들을 생명책에서 지우겠다고 말씀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말씀했다.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34절).”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신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고 명하셨다. 백성들의 죄를 용서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고 더 이상 징벌하지 않겠지만 다시 죄를 지으면 그에 상당한 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했다. 비록 조건부이지만 역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다. 또한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듭 범죄해서 결국 출애굽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다. 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할 때 모세가 중보기도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장면이 모세오경에 수시로 나온다.

 기독교는 운명론적인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예정론은 운명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운명론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전면 부정하는 기계적인 운명론으로 사람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염세사상에서 나온 것이기에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만드는 소극적이고 자학적인 세계관이다. 반면에 예정론은 하나님의 마스터플랜(경륜)을 따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큰 틀에서 사람이 정한 길로 간다고 믿기는 하지만 사람의 자유의지와 선택을 인정한다.

 사고를 당했을 때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한 후 자책하며 주저앉아 있기만 하면 운명론 쪽으로 기운 태도지만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한 후 회개하고 자기를 성찰하며 앞으로 동일한 사고가 없도록 삶의 자세를 바꾸려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그것은 운명론이 아니다. 하나님은 성도에게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다. 심지어는 성도가 뜻을 세우면 하나님이 뜻을 바꾸실 때도 있다. 그처럼 성도의 뜻과 선택에는 놀라운 파워가 있다.

 성경을 보면 사람의 결단에 따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는 표현이 많이 나온다. 역사상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 많이 들었던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백성들을 위한 위대한 중보기도를 했다. 살면서 레위인처럼 잘라내야 할 때 잘라내는 것도 잘 하면서 중보기도자 모세처럼 이어줘야 할 때 이어주는 것도 잘 하라. 잘라내는 결단과 이어주는 온유가 겸비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절망을 희망으로 만들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