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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믿음이 주는 자유(2)

by manga0713 2024. 1. 18.

[ 김선우 작가 : A Sunday on La Mauritius ]

 

 

 

본문말씀 : 시편 23편 1-6절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 믿음이 주는 자유 (2) >

 

 

3. 매임으로부터 자유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다. 그 고백은 평화롭게 노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믿음에는 ‘구도자적인 삶’도 있지만 ‘하나님의 품에서 즐겁게 노는 삶’도 있다. ‘놀이’는 의외로 중요하다. 행복과 만족을 누리려면 하나님과도 잘 놀고 사람과도 잘 놀아야 한다. 성도에게 노는 것은 ‘게으르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놀 줄 알 때 작품인생이 나온다.

 한때 기복적인 교회성장 세미나에 대한 질타의 소리가 컸다. “세미나는 샘이 나게 해서 세미나다.”라는 조롱까지 있었다. 세미나에서는 목회를 상품화시키는 원리를 배우지만 중요한 것은 목회를 작품화시키는 것이다. 다 초대형 교회가 될 필요가 없다. 작품은 독특한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작품화시키라. 물량으로 크면 그 흔적은 금방 사라지지만 자신을 작품화하면 그 흔적은 오래 남는다. 인생의 작품화를 이루려면 하나님과 놀 줄 알아야 한다.

 ‘놀이’란 말은 영어로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즉 재창조란 말이다. 놀이를 잘할 때 참 만족과 창조적인 지혜를 얻는다. ‘몰이 리더’가 아닌 ‘놀이 리더’가 되라.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으려고 몰아대듯이 외형적인 성장을 위해 몰아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교회도 ‘몰이 교회’가 아닌 ‘놀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

 사명 관계 이전에 놀이 관계에서 먼저 성공해야 한다. 게으르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삶을 삶의 기초로 삼으라는 말이다. 행복을 원하면 놀이 관계를 회복하라. 서로 마주 앉아서 게으르게 놀기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참된 놀이 관계는 아름다운 인격 관계를 통해 서로를 존중하며 기쁘게 일하고 즐겁게 쉴 때 이뤄진다.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사명과 사랑으로 맺어진 인격 관계가 진짜 놀이 관계다.

4.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두려움은 사망 자체를 통해서도 오지만 대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즉 사망의 그늘로부터 온다.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은 고백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4절).” 사건과 사고와 실패와 질병이란 사망의 음침한 그늘이 덮여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굳게 믿고 두려워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엄마가 잠깐 방을 나가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아기는 무서워서 앙앙 운다. 그때 급히 가서 안아 주면 금방 울음을 그치고 곧 엄마 품에서 새근새근 잠든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부족한 인간 부모일지라도 부모의 품에 안겼다는 사실 하나로 이렇게 평온하게 잘 수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긴 성도는 얼마나 더욱 평온을 누리며 살아야 하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정말 믿으면 누구라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이 구절에서 ‘상’은 칭찬할 때 주는 상(賞)을 의미하지 않고 밥상으로 쓰이는 상(床)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원수 앞에서 두려움에 젖지 않도록 즐거운 밥상을 차려 주신다.

 교회는 화목한 밥상 교제가 이뤄지는 장소다. 성만찬은 ‘하나님과의 화해’와 ‘사람과의 화해’가 동시에 이뤄지는 거룩한 밥상 교제 의식이다. 사람은 함께 먹으면서 마음도 통해진다. 잘 먹이면 대개 잘 순종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라고 하셨다. 교회는 영적인 식당이다. 살다 보면 두려움도 생기고 원수도 생기지만 그때 하나님은 원수들 앞에서 즐거운 밥상을 차려주심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신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