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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사망의 심판을 면하는 길

by manga0713 2023. 12. 3.

[ 방정아 작가 : 욕망의 거친 물결 ]

 

 

 

본문말씀 : 열왕기하 10장 1-17절

 

1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예후가 편지들을 써서 사마리아에 보내서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전하니 일렀으되 2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너희에게 이르거든 3 너희 주의 아들들 중에서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택하여 그의 아버지의 왕좌에 두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더라 4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 왕이 그를 당하지 못하였거든 우리가 어찌 당하리요 하고 5 그 왕궁을 책임지는 자와 그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라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행하고 어떤 사람이든지 왕으로 세우지 아니하리니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라 한지라 6 예후가 다시 그들에게 편지를 부치니 일렀으되 만일 너희가 내 편이 되어 내 말을 너희가 들으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된 사람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에 이스르엘에 이르러 내게 나아오라 하였더라 왕자 칠십 명이 그 성읍의 귀족들, 곧 그들을 양육하는 자들과 함께 있는 중에 7 편지가 그들에게 이르매 그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이스르엘 예후에게로 보내니라...

 

 

< 사망의 심판을 면하는 길 >

 본문에는 혁명을 통해 아합과 이세벨을 죽인 예후가 아합의 아들 70명을 몰살시키고 아합에게 속하거나 아합과의 만남이 있던 자들도 깡그리 진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이 주는 교훈으로써 사망의 심판을 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말씀과 기도를 앞세우라

 예후는 아합의 아들 요람 왕과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죽인 후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여러 아들을 교육하는 자들에게 위압적인 편지를 보냈다. “너희 주의 아들들이 너희와 함께 있고 또 병거와 말과 견고한 성과 무기가 너희에게 있으니 이 편지가 이르면 너희 주의 아들들 중 가장 어질고 정직한 자를 왕으로 삼고 너희 주의 집을 위해 싸움에 나서 보라(1-3절).”

 사마리아에 있던 귀족들과 왕자 교육자들의 심리를 흔들려고 보낸 예후의 편지를 받고 그들은 크게 두려워하며 말했다. “두 왕도 그를 못 당했는데 우리가 어찌 당하겠는가(4절).” 그래서 왕궁 및 성읍을 책임지는 자와 장로들과 왕자를 교육하는 자들이 예후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우리는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 말대로 다 우리가 행하고 아무도 왕을 삼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십시오(5절).”

 그 말을 듣고 예후가 다시 편지를 보냈다. “너희가 내 편이 되려거든 너희 주의 아들들의 머리를 가지고 내일 이맘때 이스르엘로 와서 내게 나아오라.” 그러자 귀족들과 왕자 양육자들이 왕자 칠십 명을 붙잡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광주리에 담아 예후에게 보냈다(6-7절). 결국 고도의 심리전으로 자신의 손에 피 하나 묻히지 않고 예후는 사마리아에 있는 왕자들을 죽이고 동족상잔의 전쟁 없이 혁명을 성공시켰다.

 일상의 삶에서도 고도의 심리전이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벗어나려면 고도의 지혜를 발휘하라. 사업할 때도 지혜로운 전략과 전술로 틈새시장을 파고들고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도록 최선을 다하라. 무작정 “믿습니다.” 하고 나가지 말라.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이길 방법을 찾고 사업 성공과 비전 성취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으라. 그런 최선의 전략과 지혜가 어디에서 오는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온다.

2.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라

 사자가 와서 왕자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다고 전하자 예후가 명령했다. “두 무더기로 쌓아 내일 아침까지 문어귀에 두라(8절).”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예후가 나가 서서 백성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의롭다. 나는 내 주를 배반해 죽였지만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알라.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해 아합의 집에 대해 하신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지금 그대로 이뤄졌다(9-10절).”

 예후는 아합의 아들 70명을 몰살시킨 책임을 은근히 남들에게 돌렸다. 동시에 아합 왕실의 진멸이 엘리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졌다면서 그 왕자들을 몰살시킨 사람들에 대해 면죄부를 주었다. 이 장면을 보면 예후도 술수에 능한 정치꾼처럼 느껴진다. 결국 아합 가문의 몰살과 아합과 관계된 사람의 몰살은 의인에 의한 혁명 성취로 보기보다는 아합 부부의 큰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것이 좋다.

 때로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게 펼쳐진다. 그 심판을 두려워하라. 힘든 현실이 펼쳐지면 나를 먼저 돌아보라. 사회적인 참사도 회개 기회로 삼으라. 그런 모습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모습이다. 나의 고통을 억울해하지 말고 하나님이 그 고통을 체험하게 하셨다고 여기고 그 체험을 통해 좀 더 겸손해지라. 내가 당하는 지금의 힘든 현실은 대개 예비 심판이다. 예비 심판이 본 심판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돌아서고 이웃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3. 악인을 멀리하며 사랑하라

 예후는 70명의 왕자를 비롯해 아합 편에 선 자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11절). 그 후 예후가 사마리아로 갈 때 양털 깎는 집에 이르러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을 만났는데 그들이 아합 가문의 왕자들과 태후의 아들들에게 문안하러 가는 중이라는 말을 듣고 그들을 사로잡아 그 집 웅덩이 곁에서 다 죽였다(12-14절). 예후는 아합 가문과 관련된 사람은 누구든지 다 죽였다.

 예후가 거기에서 떠나가다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만나 그를 자신의 편으로 이끌어 자신의 병거에 태우고 사마리아에 가서 거기에 남아 있던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다 죽였다(15-17절). 레갑 가문은 당시 백성들로부터 존중받는 경건한 가문이었다. 예후가 레갑의 아들 여호나답을 높인 것은 자신의 혁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컸다. 결국 아합 가문은 물론 그 가문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까지 완전히 진멸되었다.

 내가 지지하던 사람이 아합과 이세벨 부부처럼 불의하고 폭압적인 길로 가면 그가 아무리 좋은 자리를 제시해도 그로부터 속히 멀어지라. 그와 가까이하면 그가 심판받을 때 같이 심판받는다. 악도 멀리하고 악인도 멀리하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오해하지 말라. 악인의 영혼은 사랑해야 하지만 악에 물들지 않고 악과 타협하지 않고 악인의 회개를 위해서라도 악인을 멀리하며 사랑하는 지혜를 발휘하라. 그때는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그렇게 해야 한다.

4. 욕심과 이기주의를 버리라

 아합은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그의 시체를 실었던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을 때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다. 왕비 이세벨은 내시 둘에 의해 창문 아래로 던져져 죽었고 그 시체를 개들이 뜯어먹어서 두골과 발과 손만 남아 밭의 거름이 되었다.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은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어 그 시체가 나봇의 포도원에 던져졌고 아합의 나머지 70명의 아들들과 아합 가문에 아첨하던 유력자들도 다 몰살당했다. 그런 비극적인 역사가 주는 핵심 교훈은 권력과 명예와 소유에 대한 욕심과 이기주의를 버리라는 것이다.

 어떻게 욕심과 이기주의를 버리는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만나야 한다. 하나님과의 만남 자체를 최대 복으로 여기라.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것은 2차적인 복이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수단적인 만남이 아닌 인격적인 만남으로 만들라.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과 인격적인 짧고 깊은 만남을 가진 후부터 예수님처럼 자신의 것을 다 바치며 살다가 역사상 누구보다 많은 것을 얻은 존재가 되었다.

 좋은 배우자나 부모나 교회나 리더나 친구를 만나는 것도 복이지만 역시 가장 큰 복은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왜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깊이 만나고 예배 후에 하나님의 사람과 깊이 만나기 위해서다. 주일에 하나님과 깊이 만나고 주중에 하나님을 의지해 변화된 삶을 사는 1차적인 복은 다른 무수한 2차적인 복을 부른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모세는 2백만 명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리더가 되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삭개오는 뺏는 사람이 주는 사람으로 변했고 사마리아 여인은 어둠의 삶을 벗어났고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여자 수제자가 되었고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다. 그처럼 하나님과 깊이 만나면 지금부터 얼마든지 멋진 역전 인생을 만들어낼 수 있다.

< 하나님과 깊이 만나라 >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추구하라. 그것을 위해 내 뜻과 생각을 버리고 나의 고기 잡는 능력을 내세우기보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앞세우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순종이 없는 약속은 죽은 약속이다. 순종해야 체험한다.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소유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서 기적 체험 후에 했던 베드로의 고백이 나온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왜 기적을 체험한 후 베드로가 그런 고백을 했는가? 예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자신 때문에 예수님의 고결함에 상처가 될까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녀를 사랑하면 부모에게 늘 사랑으로 염려하는 마음이 있다. 그처럼 하나님을 깊이 만나 사랑하면 하나님께 더 이상 욕심을 부려 무엇인가를 달라고 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염려를 끼칠까를 염려하게 된다. 그런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과 마음이 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최상의 길로 이끄시고 최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물론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뤄도 수시로 죄와 사탄의 공격이 있다. 그때 나타나는 정신적인 금단현상을 기필코 이겨내라.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을 얽어매던 중독성을 극복하려고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2주간 거의 먹지도 않고 지내면서 결국 금단현상을 이겨냈다. 잘못된 것을 끊고 영적 금단현상을 이겨내면 비로소 새로운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나님을 깊이 만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을 가지면 단순히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어부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하나님은 복된 만남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제 다시 일어서라. 누구나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될 수 있다. 그런 변화를 이루라고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을 통해 도전하신다. 늘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루고 인생 반전의 역사를 멋지게 써내려가면서 사망의 심판을 면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