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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

by manga0713 2022. 9. 19.

[ 니콜라이 게 : 부활의 조짐 ]

 

 

 

본문말씀 : 사무엘상 19장 18-24절

 

18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 19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전하여 이르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 어떤 사람이 그것을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했으므로 사울이 세 번째 다시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 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도착하여 물어 이르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어떤 사람이 이르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 23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24 그가 또 그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 >
 
 성경을 보면 사울 왕은 다윗을 끊임없이 죽이려고 했다. 왜 그랬는가? 궁극적인 원인은 사울이 악령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결국 다윗이 사무엘의 은거지 라마로 도피해서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다(18절). 나욧은 영어로 리조트(resort) 개념의 숙소 혹은 기숙사 시설이다. 결국 라마 나욧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이 설립한 선지자 양성 기숙학교로 추정된다.

 그때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라마 나욧으로 보냈는데 전령들이 거기서 사무엘을 중심으로 선지자 생도들이 예언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그들도 따라 예언했다(20절). 그때의 예언은 말씀과 찬양이 섞인 소리가 입술로 표출된 방언 형식의 예언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전령들의 예언 사실을 사울에게 알리자 사울이 다른 전령들을 보냈는데 그들도 예언했고 사울이 세 번째로 또 보낸 전령들도 예언했다(21절).

 보내는 전령들마다 다윗을 죽이기는커녕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언하자 할 수 없이 사울은 최후의 수단으로 직접 라마로 갔다. 그때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도 임해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했다(23절). 그때 사울에게 하나님의 영은 더 강력하게 임해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는커녕 자신의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하며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눕자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라는 속담까지 생겼다(24절). 그 속담은 사울이 선지자가 아니라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본문이 교훈하는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무엇인가?

1. 승리의 확신을 가지라

 당시에 다윗과 사울 사이의 문제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영적 전쟁의 문제였다. 그때 사울은 제 정신으로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성경은 악령이 그에게 임해서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했다고 분명히 언급한다. 그처럼 고통스런 상황이나 환경적인 문제나 개인의 성격적인 결함이 다 악령의 영향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역사는 악한 귀신과의 영적 전쟁의 역사였다는 사실만은 잊지 말라.

 영적 세계는 있고 영적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성도는 그 전쟁에서 승리가 보장된 자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는 비유적으로 주님의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그러므로 악령과의 전쟁에서 이미 승리가 약속된 성도로서 승리를 확신하고 악령 앞에서 패배자처럼 행동하지 말라.

2. 하나님 안에 거하라

 다윗은 사울의 살해 위협을 피해 라마 나욧에 은거한 사무엘에게로 피했다. 사무엘에게로 피했다는 말은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품을 찾았다는 뜻이다. 환난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의 품을 찾는 길이다. 최종 승리는 나의 힘으로 얻기보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영적 전쟁에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이겨낼 수밖에 없다.

 어느 날 가족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면 그때 영적 전쟁에 대비하라. 다른 방법은 없다. 가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다윗이 어떻게 살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영이 대적들에게 임해서 예언이란 도구로 그들의 사고체계를 지배하고 그들의 영적 시야를 열게 해서 살게 되었다. 어려운 기도 제목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이 움직이시면 순식간에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릴 것이다.

3. 말씀을 굳게 붙잡으라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예언’이란 단어다. 누가 예언하는가? 사무엘과 함께한 선지자 생도들도 예언하고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보낸 전령들도 예언하고 심지어는 사울 자신도 예언했다. 물론 전령들의 예언과 사울의 예언은 예언적인 모습은 나타났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언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장면을 보면 각종 예언이 난무하는 오늘날의 상황이 연상된다. 예언이 난무할 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분별력이다. 언제 바른 분별력이 생기는가? 말씀을 굳게 붙잡고 살 때다.

 어느 날 말씀을 잘 모르는 한 성도가 훈련받은 대로 외쳤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그렇게 몇 마디 말로 무조건 나아가다가 가정과 인간관계가 더 어려워지고 상황과 건강이 더 나빠지기도 한다. 그런 부작용으로 나중에는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의심하거나 의심하게 만드는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려면 말씀을 가까이하라. 특히 하루의 첫 시간에 매일 성경읽기와 새벽기도를 통해 작은 승리를 이루면 굳건한 반석 위에 신앙의 집을 세운 것처럼 점차 승리의 틀이 굳게 형성된다.

< 작은 승리를 중시하라 >

 큰 승리만 생각하면서 작은 승리 하나를 경시하지 말라. 작은 승리를 차곡차곡 쌓아야 큰 승리가 준비된다. 몸 전체를 건강하고 준수하게 관리하려면 명의나 명약을 찾고 좋은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몸 끝의 작은 손톱 하나의 관리도 경시하지 않는 마음과 자세도 중요하다.

 1980년대에 미국에서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뉴욕 거리를 보면서 신기하게 여겼던 것은 곳곳에 네일 샵이 많은 것이었다. 손톱이 자라면 금방 깎아야 하는데 왜 저런 곳에 사람들이 돈을 쓸까 하고 당시에 매우 궁금해 했다. 그 궁금증이 한참 후에 풀렸다. 그것은 작은 손톱 관리 하나도 누군가에게는 행복의 요소가 된다는 평범한 원리를 깨달으면서 궁금증이 풀린 것이다. 그런 몸의 작은 부분 관리가 행복은 물론 건강도 가져다준다.

 네일 샵 의자에 앉아 편히 눈을 감고 자신의 손과 발을 관리사에게 맡겨 서비스를 받으면 30분 정도 여왕 기분도 맛보고 서비스가 끝나면 손톱과 발톱이 예쁘게 변해 있다. 네일 관리사도 손님이 좋아하면 기쁨과 보람도 느끼고 수입도 생긴다. 서로에게 윈윈이다. 병을 치료하는 의료인도 의미 있는 존재지만 손톱과 발톱을 예쁘게 만드는 네일 관리사도 돈은 덜 벌고 존경은 덜 받아도 누구에게는 의미 있는 존재다. 때로는 작은 손톱 관리가 작은 행복을 선사하면서 큰 승리를 낳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한 어린 여아가 손톱 물어뜯는 버릇이 있었다. 부모는 그 버릇이 남들 보기에 안 좋다면서 그 버릇을 고치려고 잔소리를 많이 했지만 소용없었다. 자녀가 고의로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녀도 고쳐보려고 했지만 어느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톱을 깨물기에 손톱 모양도 엉망이었고 손톱 주변도 살이 뜯긴 채 흉측해졌다. 그처럼 10년 이상의 잔소리로도 고칠 수 없었던 자녀의 손톱 물어뜯는 버릇이 어느 날 한 번의 계기로 단번에 사라졌다. 바로 그 자녀가 네일 샵에서 2만원을 주고 손톱 관리를 받을 때부터였다.

 자녀가 처음 네일 샵에 들렀을 때 네일 관리사가 자녀의 손톱을 예쁘게 만들어 주자 그 후 자녀도 만족하면서 더 이상 손톱을 물어뜯지 않았다. 그 후 몇 번 네일 관리를 받으면서 손톱을 물어뜯지 않으려는 의지가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을 이겨내다가 그 틀이 형성되자 나중에는 네일 관리를 받지 않아도 더 이상 손톱을 물어뜯지 않으면서 결국 손톱 물어뜯는 고질적인 버릇을 고쳤다. 아무리 잔소리해도 없어지지 않던 그 버릇이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네일 관리 샵에 한번 우연히 들렀다가 없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문제를 푸는 방식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처럼 최상의 방식으로 고질적인 나쁜 습관을 철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꾸준히 기도하라. 아무리 술 담배를 끊고 게임 중독을 이겨내라고 사랑의 잔소리를 해도 안 통하던 습성조차 하나님이 계획하신 신기한 방법이 나타나면 단번에 없어질 수 있다. 고난과 중병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방법을 통해 나쁜 습성이 없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2만원으로 나쁜 습성이 끊어지는 2만원의 행복 찾기 기적은 믿음의 기도로 언제 어디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외모 관리도 경시하지 말라. 예전에 저는 외모 관리를 믿음 관리나 마음 관리나 비전 관리와 비교해 아주 작은 요소로 취급했다. 그러나 사탄은 외모 관리라는 작은 관리부터 포기시키면서 믿음 관리, 마음 관리, 비전 관리도 포기시키는 전략을 즐겨 쓴다는 사실을 알면서 외모 관리도 경시하지 않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 외출할 때 가급적인 빗질 한 번 더 하려는 것은 나 때문에 가족의 체면이 깎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나의 외모 관리가 이기적인 과시가 아니라 이타적인 배려도 될 수 있음을 깨달으라. 주일 예배 때 힘써 외모 관리를 하고 오면 자기도취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으로 여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남 앞에 좋게 보이면 하나님도 높아진다. 또한 내가 몸과 마음을 좋게 관리하면 내가 섬기는 교회에 대한 인식도 좋아진다. 그처럼 외모 관리가 나를 높이는 이기적인 수단이 아니라 내 옆의 동반자를 높이는 이타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말라.

 작은 관리에서 승리해서 큰 승리를 예비하라. 사람 얼굴을 보면 관리나 화장으로 바꿀 수 없는 얼굴의 틀, 눈, 코, 입의 몇 가지 부분과 관리나 화장으로 바꿀 수 있는 피부, 눈썹, 털, 점 등의 몇 가지 부분의 작은 차이로 인류 전체 70억 명의 얼굴이 똑같은 얼굴이 하나도 없게 된다. 심지어는 얼굴의 붓기나 주름 하나의 작은 차이로도 사람 인상이 크게 달라진다. 그 말은 얼굴의 작은 부분 하나의 관리도 무시하지 말라는 암시다.

 영적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영적 전쟁이 곳곳에서 무수한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전쟁에서 계속 승리해 승리의 틀을 만들려면 작은 승리를 경시하지 말라. 짜증날 때 그 짜증을 잘 소화시키면 그것도 작은 승리다. 그런 승리를 이뤘을 때 기도하면 신기하게 기도 응답도 빨라진다. 하나님이 믿음과 지혜를 주시면 수많은 작은 분야에서 연전연승의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고 점차 굳건한 승리의 틀이 형성될 것이다. 그처럼 승리가 틀이 된 삶을 통해 인생 전쟁과 영적 전쟁에서 능히 승리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