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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라

by manga0713 2020. 3. 20.

 

 

 

 

본문말씀 : 사도행전 15장 36-41절

36.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37.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40.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도행전 15장 36-41절)

<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라 >

 할례 문제로 생긴 갈등이 잘 해결된 후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이 바나바에게 1차 선교 여행 때 세워진 교회들을 둘러보자고 했다. 그 비전에서는 일치했지만 마가를 동행시키는 문제로 인해 크게 다투다가 이별해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 육로를 이용해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갔다.

 본문 39절에 언급된 “서로 심히 다투어”라는 말씀의 원어적인 의미를 토대로 리얼하게 표현하면 “서로 박 터지게 싸워서”라는 강한 뜻이다. 그들은 감정이 고조되어 멱살을 잡고 싸우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갈라졌다. 누가 옳은가? 둘 다 옳다. 다만 둘 사이에 관점이 달랐다. 물론 싸움의 원인은 바울이 제공했다. 모든 것을 품고 마가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했던 바나바의 제안을 바울이 냉정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바울이 마가의 인격 자체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마가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지만 공적으로는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해서 선교라는 중대한 사명에 적합지 않다고 여겨서 마가의 동행을 거부한 것이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가 그 부끄러운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왜 그냥 언급했는가? 첫째, 위대한 믿음의 선진도 보통 사람과 똑같은 성정을 가졌음을 교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둘째, 사역 팀이 마음이 안 맞으면 갈라질 수도 있음을 교훈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심한 다툼이 계속되면 차라리 분리하는 것이 낫다. 하나 됨의 의미가 위치적으로 함께 있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떨어지고도 얼마든지 하나 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갈라져야 한다면 깊이 기도한 후 평안 가운데 갈라지라. 바나바와 바울은 갈라져서 더 큰 일을 이뤄냈다. 하나님은 사람의 다툼까지도 창조적인 기회로 만드셨다. 이별이 다 악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이별을 통해 기도와 열정이 불붙고 나의 숨은 자질이 드러나기도 한다.

< 이별해도 서로를 존중하라 >

 불일치가 죄는 아니다. 사람이 모든 면에서 다 일치할 수는 없다. 가족도 세세한 부분까지 다 일치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불일치가 생길 때 기쁘게 다른 일치하는 길을 찾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성도는 불일치하면서도 일치할 수 있다. 때로 이별하는 상황이 생겨도 분노와 상처를 가지고 이별하기보다 사랑과 존중을 가지고 이별하라. 분노와 상처가 없는 이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에 대한 상처로 인해 나타나는 3가지 표시가 있다. 첫째, 그 일만 생각하는 것이다. 상처 받은 생각만 하고 그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것은 상처의 표시다. 둘째, 복수를 생각하는 것이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지거나 그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거나 믿는 것도 상처의 표시다. 셋째, 문제가 생길 때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 사람 자체를 공격하는 것도 상처의 표시다.

 갈등이 생기면 사람을 반대하지 말고 그의 의견에 상대하라. 의견에 상대한다는 것은 어떤 이슈를 연구해 장단점을 분류하고 다른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문제가 아닌 사람 자체를 반대하듯이 공격적인 어투를 쓰면 서로 이성을 잃는다. 그런 상황이 없도록 주의하고 이별할 때도 성도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지 않으면서 사랑과 존중을 바탕으로 이별하라.

 불일치해도 사랑 안에서 불일치하고 용서를 앞세우고 혹시 이별해도 최대한 존중심을 가지고 이별하라.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도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과거의 상처를 힘써 잊어버리는 것이다. 과거를 우려먹지 말라. 과거를 붙잡고 과거와 싸우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과거의 삶에 얽매이면 현재의 삶이 무너진다. 치유와 화해는 과거를 잘 잊을 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