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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인생 경주에서 중시할 것

by manga0713 2023. 1. 16.

[ 얀 마테이코 : 스탄치크 ]

 

 

본문말씀 : 사무엘하 18장 19-33절

 

...28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아뢰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의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 29 왕이 이르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니라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하니 30 왕이 이르되 물러나 거기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서 있더라 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말하되 내 주 왕께 아뢸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하니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청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 인생 경주에서 중시할 것 >

 본문에는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구스의 달음질이 나온다. 그 두 사람의 달음질을 통해 얻는 교훈으로서 인생 경주를 승리하기 위해 중시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1. 이름보다 사명

 본문 19절을 보라.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다윗 군대가 압살롬 군대를 물리치고 압살롬을 죽였을 때 사독의 아들로서 다윗 왕의 전령 역할을 했던 아히마아스가 군대장관 요압에게 자신을 왕에게 보내어 승전보를 전하게 해 달라고 했다. 요압이 말했다. “왕의 아들이 죽었으니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하라(20절).”

 요압이 대신 구스 사람에게 왕에게 승전보 전하는 일을 맡기자 그가 달음질해 갔다(21절). 그때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자신도 승전보를 전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자 요압이 말했다.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을 가지고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한다(22절).” 왜 아히마아스가 왕에게 승전보를 전하겠다고 했는가? 물론 승전보를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왕 앞에 생색내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헌신도 없이 생색만 내려고 하지 말라. 항상 “내 이름을 어떻게 낼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기보다 “내 사명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생각하며 살라. 일한 것보다 이름이 더 나면 그만큼 하나님의 상급은 줄어들지만 일한 것보다 이름이 덜 나면 그만큼 하나님의 상급은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최대한 사명을 감당해 일하다가 자연스럽게 이름이 나면 조용히 기뻐하고 일한 만큼 이름이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상급이 클 것으로 알고 기뻐하라.

 기도도 마찬가지다. 진실하게 간절히 기도한 것보다 응답이 적으면 그만큼 내일의 상급은 클 것이다. 기도하면서 응답 여부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은밀히 기도하는 삶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하나님과 기도로 소통하는 것 자체로 인해 행복해하라. 또한 늘 힘써 일하면서 간절히 기도하는 삶을 습관화하라. 진실한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며 영혼 구원을 위해 애썼던 시간들은 언젠가 사람의 머리로 도저히 추산할 수 없는 큰 보상이 되어 내게 돌아올 것이다.

2. 속도보다 정도

 아히마아스가 한사코 승전보를 전하겠다고 해서 요압이 허락하자 그는 들길로 달음질해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 갔다(23절). 앞서 도착한 아히마아스가 다윗 왕에게 승전보를 전하자 왕이 물었다.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는 압살롬의 죽음을 모른 척 하며 “요압이 저를 보낼 때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 모릅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29절). 그러자 왕은 그를 물러나 서 있게 했다(30절). 지름길을 이용해 빨리 먼저 도착한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 것이다.

 살면서 속도도 중요하지만 먼저 정도를 걸으라. 지름길로 앞서는 것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지름길과 편법을 좋아하면 앞서는 것 같지만 나중에는 큰 사고가 나서 오히려 뒤쳐진다. 빨리 출세하는 것도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인생 초반에 고생 경험도 해야 더 진국 인생이 펼쳐진다. 특별한 길이나 짜릿한 것만 너무 좋아하지 말라. 자극적인 것을 찾으면 더 목말라지지만 묵묵히 헌신하면 어느 새 높아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익을 쫓아 잽싸게 이동하면 오히려 늦어진다.

 어느 초대형 교회에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준다니까 근처의 작은 교회를 다니는 한 부모가 자녀에게 말했다. “얘야, 너는 그 교회로 가라. 거기서는 친구도 많이 사귈 수 있어.” 반면에 다른 부모는 자녀에게 말했다. “얘야, 장학금을 받거나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어도 거기로 가지 말고 네가 약한 우리 교회를 일으켜 나중에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꿈을 가져보라.” 어느 자녀가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성숙하게 자라겠는가? 당연히 후자다. 참된 복은 욕심의 터전 위에 생성되지 않는다.

 빠르게 유익을 얻으려고 잽싸게 말을 갈아타거나 믿음의 터전을 바꾸면 오히려 유익이 되지 않는다. 늦더라도 바르게 사명을 따라 살 때 진짜 유익을 얻는다. 계산하지 않고 묵묵히 하나님과 교회를 섬길 때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참된 동지와 멘토를 얻는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의 전쟁(속도전)’이 아니라 ‘정도와의 전쟁(정도전)’이다. 너무 빨리 가려다가 깃털처럼 바람에 날리는 가벼운 영혼이 되지 말고 자기의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는 진중한 영혼이 되라. 묵묵히 바른 길로 가는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

3. 감정보다 의지

 다윗이 아히마아스를 물러서게 하자 곧 구스 사람이 이르러 왕에게 승전보를 전했다. 다윗이 물었다. “젊은 압살롬은 잘 있느냐.” 그가 솔직히 압살롬의 죽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자 다윗이 통곡했다(33절). 다윗의 통곡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도 압살롬의 반역 진압을 위해 목숨 걸고 전쟁에 나선 군사들 앞에서는 그런 감정적인 눈물을 자제해야 했다. 군사들은 “내가 이런 모습을 보려고 목숨 걸고 싸웠나?”라고 하면서 사기가 크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는 감정을 절제하고 의지적인 믿음의 본을 보여야 한다.

 압살롬의 문제는 자기 뜻대로 서둘러 왕이 되려고 했던 것이었다. 너무 성급하게 복을 자기 힘으로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라. 어떤 일을 만나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의지적인 믿음으로 침착하게 대응하라. 응답이 늦어도 넉넉함을 잃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몇 달 인생’이 아닌 ‘몇 십 년 인생’이 되라. 기도와 헌신과 인내를 몇 달 해보고 실망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며 믿음으로 기다리면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복과 은혜도 클 것이다. 내게 복이 적게 주어지면 그만큼 내 자녀나 제자에게 복된 역사가 펼쳐질 것이다.

 어떤 사역자는 생각한다. “기적적인 후원의 손길을 통해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사역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부럽다. 왜 내게는 그런 후원이 없을까?” 그러나 <월새기> 창간 전에 이미 14년의 문서 선교의 역사가 있었다. 좋은 후원자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오랜 세월의 헌신을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인식시키는 작업부터 하라. 내가 의미 있는 사역을 시작한다고 해서 후원자가 갑자기 물밀 듯이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랜 세월을 헌신한 역사가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야 그들이 주머니를 비우는 후원 결단을 한다.

 잠깐 헌신하고 끝내는 얕은 헌신을 버리라. 잠깐 사역하고 대박 후원을 기대하는 얕은 마음도 버리라. 꾸준히 헌신하면서 의지적인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기다리라. 꿈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 나의 꿈 성취를 위해 뒤에서 목회자가 소리 없이 꾸준히 기도해 주고 있음을 기억하라. 무엇보다 하나님이 뒤에서 지켜 주고 계심을 기억하라. 의지적인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나의 꾸준한 헌신을 나타내는 핵심 태도인 주일성수에 힘쓰라.

<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라 >

 압살롬은 불효자란 말도 적절하지 않고 거의 패륜아였다. 그는 다윗의 맏아들 암논을 죽였고 아버지에게 반역을 일으켰으며 아버지의 후궁들과 사람들 앞에서 버젓이 동침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패륜적인 아들에게 대해서도 다윗은 자신의 군사들이 전쟁에 나갈 때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라고 했고(삼하 18:5) 전쟁에서 승리한 뒤에는 두 번이나 “젊은 압살롬이 잘 있느냐?”라고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그때 다윗이 ‘젊은 압살롬’이라고 호칭한 것을 보면 다윗은 압살롬이 철이 없어 그렇게 행동한다고 이해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런 패륜아가 죽은 소식을 듣고 다윗은 그의 반역으로 왕궁에서 황급히 도망칠 때보다 더 심하게 통곡했다. 다윗의 압살롬을 향한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떠올리라. 하나님은 내가 압살롬 같아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내게 현재 고통이 있고 심지어는 죽게 되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믿음으로 살라.

 역사에는 우연이 없다. 하나님이 현재 상황도 필연적으로 있게 하셨다. 지금의 현실은 하나님이 빚으신 현실이다. 현재의 힘든 현실이 나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라도 그 잘못된 선택을 통해 배울 것을 배우라고 하나님이 그 현실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재수가 없다. 재수가 좋다.”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모든 사건과 역사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선한 손길이 있음을 잊지 말라.

 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새벽에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 나서 그 전에 준비한 원고를 가지고 설교하지 못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10시에 한 집사가 문자를 보내왔다. “목사님! 컴퓨터 성능 어때요? 이제 바꿔야 하지 않나요?” 수리 기사 외에 아무도 컴퓨터가 고장 난 얘기를 몰랐는데 신기하게 그날 그런 문자가 왔다. 결국 그때 컴퓨터를 바꾼 후 지금까지 10년간 아무런 고장 없이 잘 쓰고 있다. 그것이 우연인가? 필자는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우연을 가장해 필연적으로 일을 이루신다.

 나의 모든 인생 발자국과 모든 아픔과 고통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필연적으로 있음을 있지 말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것도 하나님의 손길로 이뤄진 것이다. 그 하나님의 손길은 내가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나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내가 지금 이만큼 살아가고 살아내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늘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음으로 내일의 복과 승리를 예비하며 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