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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주님과 함께 죽고 살라

by manga0713 2021. 10. 20.

[ 지거 쾨더 : 최후 만찬 ]

 

 

본문말씀 : 골로새서 3장 3-4절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 주님과 함께 죽으라 >

 성도란 땅에 것에 대해 이미 죽은 존재이다(3절). 앞으로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왜 살면서 걱정 근심이 많고 문제가 복잡해지는가?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아직도 덜 죽고 설죽어서 그렇게 바동거리며 살고 생각도 복잡한 것이다.

 현대인의 수많은 심리적 질병들은 ‘내가 죽었다‘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면 대개 치료가 가능하다. 왜 편집증이 생기는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편집증에서 탈출하는 길도 자신이 죽는 길 밖에 없다. “과거를 얼마나 깨끗이 묻고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느냐?”에 따라 인생의 추진력도 달라진다.

 왜 ‘회개’가 중요한가? 회개란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미련을 버리고 세상적인 자신을 죽이는 것이다. 과거의 세상적인 자신이 철저히 죽어야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극복하고 새롭게 일어날 힘이 생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구하려고 무작정 뛰어들면 아무리 수영을 잘해도 같이 붙잡혀 죽기 쉽다. 물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림을 끝내고 기절해서 반쯤 죽었을 때 접근해야 그를 건져내어 살릴 수 있다.

 영적으로도 똑같다. 극심한 고통 중에서 주위 사람과 환경을 원망하고 핑계를 대면서 여전히 자기가 살아서 바동거린다면 그를 붙잡아 주겠다고 하다가 자신의 믿음과 평안도 깨질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 충고 한 번 잘못 했다가는 평생 원수가 되고 도움을 줘도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원망만 듣기 쉽다. 그러나 그가 바동거리는 것을 끝내고 철저히 낮아지고 죽어질 때 손을 벌리면 그를 비로소 고통 중에서 건져낼 수 있다. 그처럼 철저히 죽어야 한다.

< 주님과 함께 살라 >

 죽은 사람은 말이나 환경에 따라 요동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칭찬해도 교만하지 않고 욕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죽을 수 있다면 평안을 잃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 3절에 나온 “너희가 죽었고”란 말처럼 위대한 말은 없다. 성도란 세상에 대해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죽은 사실에서 끝나면 안 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다음에는 다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야 한다.

 요즘 성형 수술로 자신감을 찾은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나 성형수술이 주는 자신감은 일시적이다. 미국의 유명한 한 외과의사가 쓴 논문에 의하면 대부분의 성형수술 환자들에게 생각과 생활이 큰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실제로 성형수술로 아름답게 된 여인들도 이전의 미운 오리새끼였던 때의 생각을 버리지 못해서 여전히 “나는 못생겼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면 특히 3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란 소속의식이 필요하다. 둘째, “나는 가치 있는 존재다.”란 가치의식이 필요하다. 셋째, “나는 할 수 있다.”란 가능성의식이 필요하다. 육신의 성형수술을 아무리 잘해도 그런 의식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영적인 성형수술을 받으면 소속감이 확실해지고 가치감이 뚜렷해지며 자신감도 넘치게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난 존재다. 그러므로 과거의 부정적인 모습을 잊고 예수님 안에서 산 소망이 넘치는 모습을 가지고 살라. 자신을 잘 죽이는 데에서만 머무르지 말라. 부정적인 일과 부정적인 과거와 세상 욕망에 대해서는 잘 죽어야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힘차게 잘 살아야 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