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지혜롭게 사는 길

by manga0713 2024. 5. 20.

[ 이영지 작가 : 그대를 비출께요 ]

 

 

 

본문말씀 : 잠언 24장 8-15절

 

8 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9 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10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13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5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 지혜롭게 사는 길 >

 인생을 살면서 덜 중요한 일과 더 중요한 일을 분별하며 지혜롭게 살라. 그처럼 지혜롭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악행하기를 꾀하지 말라

 악행을 꾀하는 자는 사악하고 미련하고 거만한 자로서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8-9절). 반면에 겸손하게 선을 베풀면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남에게 선을 행하면 남도 좋아지지만 나는 더 좋아진다. 성공이란 많이 가진 것이 아니다. 내가 많이 가진 것이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무슨 성공이 되겠는가? 나의 사명에 충실하면서 내가 가진 것으로 보다 많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진짜 성공이다. 작은 선행을 가치 있게 여기고 악행은 힘써 버리라.

 일전에 서울 아파트 5억 원짜리가 10억 원으로 올랐고 10억 원짜리가 20억 원으로 올랐다. 그때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진 한 사람이 단번에 20억 원 자산가가 되었다. 그가 여윳돈 5억 원으로 아파트를 한 채 더 사려는데 그 아파트가 10억 원으로 올라 사기 힘들게 되었다고 불평했다. “망할 놈의 정부! 왜 이렇게 아파트 가격을 올렸어.”

 그때 아파트 값 상승의 진짜 원인은 사람의 욕망이기에 이렇게 한탄해야 했다. “망할 놈의 내 욕심! 왜 이렇게 욕심 통제를 못할까.” 욕심에 사로잡히면 이익을 본 것은 감사할 줄 모르고 손해를 본 것만 생각하며 불평한다. 결국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무지와 악행과 미련과 불행을 낳는다. 욕심과 죄와 악행을 힘써 멀리해야 지혜가 생긴다.

2. 환난 날에 낙담하지 말라

 본문 10절을 보라. “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환난 중에 낙담하며 부족한 현실만 바라보지 말라. 현실 너머의 세계적인 시야를 가지고 미래를 대비하며 살고 현실 이면의 심미안적인 시야를 가지고 행복을 노래하며 살라. 인생을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가성비의 관점으로만 보지 말고 가격 대비 심성이 행복해지는 가심비의 관점으로도 볼 줄 알라.

 물질적인 세계관을 가지면 작은 것을 쓸모없게 여기지만 하나님의 세계관을 가지면 작은 것도 하나님의 창조물로 여겨 무시하지 않게 되고 내가 가진 것이 작아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나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조만간 이 땅을 떠나 하나님께 돌아갈 존재임을 인식하면서 현재 없는 것으로 인해 낙심하지 말고 현재 있는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사용해서 가심비 높은 인생을 살아가라.

 왜 믿는 내게 종종 문제가 생기는가? 그 문제를 통해 하나님은 내가 좀 더 성숙해지고 진실해지길 원하신다. 사람은 죽음이 가까워지면 진실해진다. 죽음 앞에서 폼 잡는 사람은 없다. 죽음은 인생 최고의 스승으로서 사람을 진실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죽음만큼은 아니지만 환난도 훌륭한 스승이다. 환난 날에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으면 성숙해지고 지혜가 생기면서 은혜도 따라온다.

3. 절망한 이웃을 구원하라

 본문 11절을 보라.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죽음의 수렁에서 절망한 사람을 건져 주고 죽게 된 자를 힘써 구원하라는 말씀이다. 절망한 사람을 힘써 돕는 것은 내일의 복을 예고한다. 하나님은 나의 돕는 모습을 다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12절).

 이웃에 대해 무심하고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삶은 어리석고 불행한 삶이다. 남을 울리면서 얻는 부는 결코 복이 아니다. 남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 돈을 벌려고 남을 울려도 안 되고 돈을 잘 쓸 줄 몰라도 안 된다. 돈을 벌어 가정과 교회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고 직원과 이웃을 위해 쓰고 사회와 국가를 위해 쓰라. 지혜롭게 벌고 지혜롭게 써서 의롭고 존경받는 부자가 되어 절망한 이웃 구원에 나서라. 자녀에게도 그런 청지기 의식을 심어주면 반드시 지혜롭고 복된 자녀가 된다.

 절망한 사람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천사가 되라. 천사는 영계의 보이지 않는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천사일 수 있고 내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일 수 있다. 내가 격려의 말로 용기를 북돋워 주는 천사, 복된 인생을 위한 길잡이와 모델이 되는 천사, 밝고 활기찬 공동체를 만들려고 애쓰는 천사가 되려고 하면 점차 삶의 지혜도 넘치게 될 것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라

 본문 13절을 보라.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꿀은 몸에 매우 유익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에 매우 유익하다. 말씀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먹는 것은 더 중요하다.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은 말씀이 생명을 지탱시키는 최고의 에너지 공급원이란 암시다.

 또한 말씀을 먹는다는 표현에는 말씀을 지식적으로 보고 듣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우리 교회는 말씀이 좋아.”라는 고백에서 끝나지 말고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소화해서 들은 말씀대로 힘써 실천하라. 말씀 공부나 말씀 연구 자체가 최종 목표가 아니다. 왜 매주 말씀을 듣고 성경 공부나 성경 중심적인 제자 훈련을 하는가?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다.

 로마서 12장 3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왜 사람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는가? 지나친 호기심 때문이다. 적절한 호기심은 문명의 발전을 낳지만 지나친 호기심은 영혼을 미혹에 빠뜨린다. 인간적인 지나친 호기심을 멀리하고 말씀 안에서 순리대로 살아야 생각과 행동이 지혜롭게 된다.

5.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라

 본문 15절을 보라.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의인의 가정이나 의인의 집인 교회를 영혼의 안식처로 여기고 허물을 찾으면서 허물지 않도록 힘쓰라는 말씀이다. 왜 하나님은 성도를 교회의 한 식구로 묶어 주셨는가? 서로 눈치를 주면서 서로의 믿음을 사찰하는 사찰단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 소명을 일깨워 주면서 서로의 믿음을 격려하는 버팀목이 되라는 뜻이다.

 최근에 저희 집 베란다와 에어컨 사이에 까치가 열심히 새집을 짓고 얼마 후 그곳에 알 두 개를 낳았다.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알의 부화를 기다리며 자주 까치집 근처로 자주 가서 그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니까 까치가 사람의 흔적으로 인해 위기를 느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며칠 후 알이 하나 없어졌고 다시 며칠 후 다른 알도 없어졌다. 그 후 더 이상 까치가 돌아오지 않았다.

 교회를 섬길 때 남의 일거수일투족을 너무 살피지 말고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일에 집중하라. 봉사할 때도 나의 흔적과 그림자가 너무 나타나지 않게 하라. 물에 비친 내 그림자로 인해 물고기가 도망갈까 주의하며 행동하듯이 나의 그림자와 흔적이 너무 남에게 드러나지 않도록 소리 없이 은밀하게 봉사하라. 어떤 일을 하든지 나를 소리 없이 감추고 혹시 그림자라도 나타날까 주의하면서 교회를 섬기라. 다만 소리 없이 섬기라는 말이 교회를 침묵이 흐르는 무덤 교회로 만들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라 >

 어느 날 한 엄마가 결혼하는 딸이 남편 따라 교회에 새로 등록하게 되자 교회 생활을 잘하도록 가르치면서 교회에서는 무조건 참으라고 했다. 그 가르침대로 그 딸이 교회생활을 잘하자 모든 교인이 칭찬했다. 그런데 점차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결국 시어머니가 아들에게 며느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다. 아들이 솔직히 말했다. “아내가 결혼 전에는 교회에서 조잘조잘 말을 재미있게 잘했는데 새로운 교회에서 늘 조용히 지내고 말을 참기만 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들 얘기를 듣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얘야, 왜 그렇게 참기만 했니? 교회에서 편안하게 말해라.” 며느리가 말했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 후 그녀가 다시 옛날처럼 교회에서 조잘조잘 말하면서 얼굴의 창백함이 사라지고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 친정 엄마의 무조건 참으라는 말은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말이었는데 그녀는 그 말을 무조건 침묵하라는 말로 오해해서 들은 것이다.

 교회는 침묵을 강요하는 곳이 아니라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는 곳이다. 교회를 다니면서 얼굴과 입술에 넘치는 기쁨이 나타나도록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라. 하나님 앞에서 내어놓지 못할 것이 없다. 나의 한을 다 내어놓고 더 나아가 나의 욕심을 다 내려놓으면서 예배 중에 참된 위로와 안식과 평화를 얻게 하는 곳이 교회다. 지혜로운 삶을 진심으로 원하면 하나님과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라. 늘 타인 감수성과 선교 마인드를 앞세워 말씀대로 살고 교회를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지혜롭게 사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