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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최후 승리를 얻는 길

by manga0713 2024. 1. 2.

[ 김선우 작가 ]

 

 

 

본문말씀 : 열왕기하 19장 28-37절

 

28 네가 내게 향한 분노와 네 교만한 말이 내 귀에 들렸도다 그러므로 내가 갈고리를 네 코에 꿰고 재갈을 네 입에 물려 너를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키리라 하셨나이다 29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30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33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34 내가 나와 나의 종 다윗을 위하여 이 성을 보호하여 구원하리라 하셨나이다 하였더라 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36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37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 최후 승리를 얻는 길 >

 본문에는 대군을 이끌고 공격해 온 앗수르 왕 산헤립의 조롱과 위협을 듣고 히스기야 왕이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말씀을 주신 후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 앗수르의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죽이심으로 극적인 승리를 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처럼 절망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최후 승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교만을 철저히 버리라

 당시 앗수르 왕 산헤립은 자신의 힘으로 주변의 많은 성읍을 정복한 것처럼 교만하게 굴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언사를 썼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한 산헤립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그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 오던 길로 끌어 돌이킬 것이라고 하셨다(28절). 결국 산헤립의 비참한 패퇴는 그의 교만 때문이었다.

 사람이 쓰임 받지 못하거나 한때 쓰임 받았다가 버림받는 가장 큰 이유도 교만 때문이다. 교만은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고 마음의 상처를 도지게 하는 제일 원인이다. 반면에 겸손하면 상처도 잘 주지 않지만 상처도 잘 받지 않는다. 살면서 멋지게 불타오르는 굵은 재목만 되려고 하지 말고 겸손히 잘 타오르는 불쏘시개가 되려는 마음도 가지라. 스스로 불쏘시개가 되려는 십일조 교인과 스스로 불타 없어지려는 백일조 교인이 사회와 공동체의 희망이다.

 인생의 최대 대적은 교만이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기면 즉시 회개 기도를 하라. “하나님! 제가 겸손한 줄 알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교만했군요. 저를 용서하시고 은혜를 베푸소서.” 간절한 기도 제목이 생기면 내면에 숨겨졌던 교만을 회개하는 기회로 삼으라. 큰 코를 다치거나 더 큰일이 생기기 전에 회개하고 겸손으로 무장하라. 겸손하다는 사람도 종종 교만한 언행이 불쑥 표출된다. 그런 표출이 최대한 없도록 겸손을 체질화시키라.

 교만하게 말씀을 판단하면서 쳐내면 결국 망하지만 겸손하게 말씀을 감사하면서 받으면 결국 승리한다. 나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면서 더 겸손하게 배우려고 할 때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 수시로 “하나님! 겸손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라. 겸손이 가져다줄 복과 열매를 생각하면 겸손을 구하는 기도는 바른 기도이면서 최대로 복을 구하는 기도다.


2. 내일의 희망을 가지라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앗수르 왕에게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지만 히스기야에게는 금년보다 내년이 나아지고 삼년 째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의 말씀을 주셨다(29절). 또한 하나님은 유다 족속 중 남은 자를 통해 회복과 번성의 은혜를 주시고 앗수르가 예루살렘 성에서 패퇴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다(32-33절).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성도는 금년보다 내년이 나아지고 내년보다 내후년이 나아질 것이다. 그런 희망을 품고 고난과 대적이 있어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지만 천국은 영원하다. 그처럼 영원한 천국 희망을 품고 어두운 밤에 촛불 하나라도 켜고 메마른 땅에 꽃씨 하나라도 뿌리라.

 큰 문제가 생겨도 너무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낙망보다는 갈망을 품고 절망보다는 희망을 품으라. 물론 갈망과 희망이 있어도 갑자기 최상의 내일이 펼쳐지지는 않는다. 최후 승리로 가는 길에는 늘 높은 산과 깊은 골이 있다. 그런 장벽과 수렁 앞에서 낙망과 절망의 중력을 이겨내는 갈망과 희망의 부력을 갖추라.

 세상은 고통의 바다와 같아서 거룩한 부력이 없으면 점점 가라앉아 죽는다. 게다가 낙심과 상처와 절망의 짐을 지고 있으면 더 빨리 가라앉는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부력을 키우라. 힘들 때는 의지적으로 하나님과 말씀을 찾고 편할 때는 더 의지적으로 하나님과 말씀을 찾으라. 편안하면 더 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의 바다에 젖어 살면 가끔 고통의 비가 와도 비에 젖기보다 오히려 비로 인해 더 깨끗해지고 새로워질 것이다.

3. 의로운 다윗처럼 살라

 왜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보호하고 구원하시는가? 본문 34절에는 그 두 가지 이유가 명쾌하게 언급된다. 첫째, 하나님을 위해서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구원뿐만 아니라 모든 구원을 통해 영광 받길 원하신다. 둘째, 다윗을 위해서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지키심으로 다윗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길 원하신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굳게 믿고 다윗처럼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라. 다윗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았지만 늘 하나님 앞에 합하고 바른 존재가 되길 원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은 그의 의로 여기셨다. 다윗처럼 의로운 한 사람이 있으면 예루살렘 성도 구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의인에게 주신 약속대로 후대까지 복을 내려 주실 것이다.

 의인 한 사람의 힘은 작은 힘이 아니다. 공동체를 구하는 의인 한 사람의 꿈을 가지라. 의인이란 말을 언뜻 들으면 굳은 결기를 느낀다. 의를 위해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 선한 결심을 했으면 “죽으면 죽으리라! 잃으면 잃으리라!”라는 심정으로 의와 선을 밀어붙이라. 동시에 결기 속에 깊은 사랑을 숨겨 두라. 겉으로는 의를 이루려고 밀어내면서도 속으로는 사랑으로 끌어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인물 가능성은 현실이 된다.

 어느 교회에 한 중직이 나이가 들어 교회 봉사의 일선에서 은퇴할 때 담임목사가 말했다. “집사님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의인 한 사람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된다. 교회 봉사를 할 때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좋지만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것은 더 좋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 갈등과 어려움이 있어도 리더를 묵묵히 따라 주라. 교회 리더에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힘이 되면 교회도 은혜 받고 교회를 통해 자신도 은혜 받을 것이다.
 
4. 승리의 확신을 가지라

 이사야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끝나자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쳤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다(35절). 그때 대군을 다 잃은 앗수르 왕 산헤립은 퇴각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니느웨에 거주하면서 리더십도 다 잃었을 것이다. 결국 그가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 아들들인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자 그의 또 다른 아들인 에살핫돈이 대신 왕이 되었다(36-37절).

 당대의 정복자인 앗수르 왕 산헤립 앞에서 히스기야 왕은 도저히 남유다를 지킬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이었다. 하나님은 극적으로 교만한 산헤립을 제거하고 남유다를 구원하셨다. 그처럼 1%의 가능성이 100%의 현실이 되는 구원의 역사와 절망이 희망이 되는 역전의 역사가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이 나의 질병과 문제는 물론 나의 대적까지도 직접 상대해 주실 것이다. 그때는 나의 대적이 문제 해결 방향으로 움직이는 역사도 있을 것이다. 즉 불의한 상사가 조기에 퇴사하고 상처를 준 이웃이 이사를 가고 괴롭힌 학생이 전학 가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삶은 물론 상대의 삶도 완벽히 통제하시기에 삶의 과정에서 기복은 있어도 최종적으로는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이다.

< 최후의 승리자가 되라 >

 하나님이 패배를 허락하실 때는 반드시 선한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인생의 성패를 너무 일찍 단정 짓지 말라. 너무 빨리 승리를 자축하지 말고 너무 빨리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최후의 승리다. 과거의 성공에 너무 머물러 있지 말라. 중요한 것은 최상의 복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의 실패에도 너무 머물러 있지 말라. 인생에서 아픈 과거가 없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과거의 아픔을 잘 승화시키면 인생을 예술로 만들 수 있다.

 한 소년이 어릴 때 아빠가 떠나는 큰 아픔을 당했다. 엄마는 종종 자신 앞에서 아빠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 아픔을 통해 엄마가 하나님을 만났다. 그처럼 아픈 경험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아픔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믿음과 소망은 굳건해진다. 그 엄마는 아픔을 통해 교회와 말씀과 기도와 봉사를 가까이하면서 길과 행복을 찾았고 그 엄마의 기도를 먹고 자란 아들은 IT계의 큰 인물이 되었다.

 아픔을 통해 진주 인생을 만들어내라. 아직도 기회는 있다. 악인의 형통과 의인의 고통을 보면서 너무 실망하거나 믿음에 회의를 품지 말라. 현재의 외적인 비교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평가하지 말라.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에는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중요한 것은 최후의 승리다. 의인의 고통은 반짝 고통이고 악인의 형통은 반짝 형통이다. 일시적인 것에 인생을 걸지 말고 영속적인 것에 인생을 걸라.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악인의 압제를 두려워하지 말라. 나의 고통을 하나님의 외면이나 유기 증거로 여기기보다 은혜와 복으로 여기는 사람이 진짜 성도다. 그런 성도가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 참된 복이 무엇인가? 높은 자리에서 과시하다가 낮은 자리로 밀리기보다 낮은 자리에서 섬기다가 높은 자리로 올라서는 것이다. 또한 일찍 승리했다가 최후에 패배하는 것보다 일찍 패배했다가 최후에 승리하는 것이다. 늘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나아감으로 2024년을 승리하는 한 해로 만들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