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치유의 은혜를 입는 길

by manga0713 2022. 9. 13.

[ 잔 밴 헤메션 : 치유받은 중풍병자 ]

 

 

본문말씀 : 마태복음 9장 1-8절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 치유의 은혜를 입는 길 >

 요즘 의술 발전으로 기적적인 치유에 대한 믿음과 추구가 많이 약해졌다. 그러나 기적적인 치유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다. 문제는 치유를 왜곡하고 거짓 선전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영성 신앙인과 이단 교주는 치유를 자신의 능력과 영성 선전의 도구로 이용한다. 그러나 치유는 인정하되 극단주의자의 과도한 치유 선전은 경계하라. 은사를 높은 영성 계급장으로 여기지 말고 은사 집회 강사를 겸손하게 자신이 섬기고 자신을 섬기는 담임 목사보다 능력 있게 보지 말라.

 극단주의자의 교만하고 과장된 치유 선전은 그저 선전으로 그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치유는 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치유 선전자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겸손하게 자신이 섬기고 자신을 섬기는 교회와 목사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기반과 교회의 덕을 해치지 않는 한계 안에서 성경적인 치유를 사모하라. 그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치유의 은혜를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믿음을 보여드리라

 예수님이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 들린 자 둘에게서 쫓아낸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닷물에서 몰사했다. 그로 인해 그곳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곳을 떠나달라고 간구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배에 올라 게네사렛 호수를 건너가 본 동네인 가버나움에 이르셨다(1절). 가버나움을 ‘본 동네’라고 표현한 것은 갈릴리의 주도인 가버나움이 예수님의 초기 사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그때 사람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의하면 그때 예수님이 계신 가버나움 집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중풍병자의 친구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렸다. 그 중풍병자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믿음과 사랑이 넘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예수님은 중풍병자와 그 친구들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보셨다. 즉 그들의 행위에 깃든 믿음을 보셨다. 그 말은 행위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다는 암시다.

 구원의 은혜는 물론 생활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도 믿음이 행위보다 중요하다. 행위가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대개 행위에 믿음이 깃들어 있다. 왜 순수하게 헌신할 때 치유의 역사가 잘 나타나는가? 그 행위에 믿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왜 꾸준한 교회 봉사를 통해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있는가? 역시 그 봉사에 믿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믿음이 있기에 사회적 위치가 있는 사람이 교회에서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나의 모습과 행위를 통해 믿음을 보여드리면 치유와 회복의 은혜가 급히 나타날 것이다.

2. 죄 사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테크논)’라고 호칭하셨다(2절). 그 호칭을 보면 중풍병자는 대략 20세 전후의 청년으로 추정된다. 그는 오랫동안 심한 중풍으로 살이 거의 없을 정도로 비쩍 말랐고 걷지도 못했다. 그 청년은 늘 불안감을 가지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슨 죄를 지어 이런가?” 그 마음을 읽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죄 사함은 모든 은혜의 기초로서 그 은혜를 통해 실제적인 치유의 능력과 가능성은 크게 증대된다.

 영혼이 거친 세상 공격을 이겨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누군가의 격려다. 과도하게 사람을 띄우지 말고 사명을 도전하는 진솔하고 잔잔한 격려를 많이 해 주라. 그처럼 사람의 격려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격려다. 하나님의 격려 중 최상의 격려는 죄 사함의 확신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음행 죄로 잡힌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 여자에게 그보다 더 큰 격려는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의 확신을 통해 최상의 격려를 하셨다. 고대에는 중병이 죄 때문에 생긴다고 보편적으로 여겼기에 예수님의 죄 사함의 선포는 청년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칭찬과 격려는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받는 것도 중요하다. 호의를 잘 받아들이면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더 호의를 주고 싶게 만든다. 그처럼 죄 사함의 은혜도 잘 받아들일 때 더 큰 은혜와 치유의 능력이 나타난다.

3. 생각부터 승리하라

 당시 어떤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 사람을 받았다고 말씀하시자 속으로 말했다.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한다(3절).” 예수님이 그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4절).” 유대 기득권자들의 악한 행동은 결국 악한 생각에서 나왔다. 생각부터 승리하라. 생각의 힘은 의외로 크다. 생각이 행동을 낳는다. 왜 두려움에 빠지는가? 생각부터 지기 때문이다. 왜 내 몸을 최상으로 만들지 못하는가? 생각부터 포기하기 때문이다. 왜 삶에 불행이 예고되는가? 생각부터 비관적이고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엄마는 자녀가 잘못하면 충격 요법으로 도전을 주려고 이렇게 말한다. “으이그, 바보 같이. 네가 할 줄 아는 게 뭐니?” 그런 말을 들으면 할 의욕마저 꺾인다. 누군가가 잘못하거나 실수하거나 잘 모르면 비난부터 하지 말고 사려 깊은 설명부터 하라. 문제아 문제는 대개 문제 부모 문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 되기를 원하면 함부로 비판하지 말고 그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훈련을 하라.

 좋게 생각하는 법을 체질화시키라. 행복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똑같은 현실과 상황이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부정적인 생각만 하지 말고 너무 속단하지도 말라. 좋은 생각으로 좋은 역사를 선도하라. 좋은 역사는 이전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린 삶의 열매로 나타난다. 말하기 전에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옳은 길로 가려고 하라. 바른 행동보다 바른 생각이 우선이다. 좋은 생각이 좋은 행동을 낳는다. 생각부터 좋게 변화시킬 때 회복과 건강의 은혜도 넘치게 나타난다.

4. 일어나 걸어가라

 그때 예수님은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님을 나타내려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6절).” “일어나 가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행동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는 암시다. 가만히 누워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일어나라. 여러 번 실패하고 패배하고 좌절했어도 다시 일어서라. “이제 안 돼. 끝났어.”라고 하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서 일하고 일을 내라.

 요새 한류가 세계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앞으로 체제 문제나 전쟁 문제로 인한 반역사적인 사건만 없다면 세계 최대의 창조 문자인 한글을 바탕으로 현재 거의 최고 위치에 오른 한국 드라마, 음악, 웹툰, 게임 등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고 한국 영화, 문화, 음식, 카페, 여행 등에서도 한류가 확산될 것이다. 한국 교회가 요즘 사회적인 영향력이 약해져서 복음 한류가 잠시 주춤한 상태지만 그래도 한국 교회의 저력을 살려서 복음 한류도 확산될 것이다.

 언젠가 거룩한 비전 후원자와의 만남을 통해 마중물 재정이 마련되면 <월간새벽기도(월새기) 영어판>이 한 권에 1달러에 미국에서부터 보급되어 세계로 확산될 것이다. 또한 400페이지 책 100권으로 된 <이한규 성경전권강해>도 복음 한류 확산에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필자는 필자의 이름과 비슷한 ‘한류’라는 표현에 친근감을 느낀다. 그런 복음 한류 비전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건강이 유지되는 것 같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비전이 지금처럼 견고하고 구체적으로 구축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 너무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일 설교를 완전원고로 꾸준히 작성하면서 매일의 땀의 흔적들이 모여 점차 비전이 한 단계씩 커지는 은혜가 따랐다. 그처럼 현재의 모습은 부족해도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계속 나아가면 하나님이 동지와 능력과 기회도 주시고 더 나아가 건강도 주실 것이다.

5.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예수님이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라고 하자 중풍병자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7절). 이 장면은 깔끔한 느낌을 준다. 그때 예수님은 화려한 말을 하지 않고 “악한 중풍 마귀야! 물러가라.”라고 크게 소리치지도 않고 짤막한 몇 마디 말씀만 조용히 하셨다. 또한 안수하거나 손을 붙잡아 일으키거나 품에 껴안고 일으키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화려하게 드러내는 가식과 쇼맨십이 전혀 없으셨다.

 중풍병자의 치유 후에도 깔끔하시고 간결하셨다. 그래서 “여러분, 저 기적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라고 드러내지도 않으셨고 치유된 청년에게 “이리 와서 간증해 보게.”라고 무대로 올리지도 않으셨다. 조용히 청년이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냥 지켜보셨다. 그때 잠시 무리들 사이에 무언의 침묵이 흘렀을 것이다. 왜 예수님은 그런 장면을 보이셨는가? 역시 가식과 쇼맨십을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무언의 침묵 후에 무리들이 그 장면을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8절).

 당시 무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어떻게 했는가? 두려워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요새 많은 사람들이 법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법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역사의 심판이다. 가장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이다. 사람의 심판이나 역사의 심판은 피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다른 두려움이 없어진다. 하나님을 늘 경외함으로 자신의 영혼은 물론 몸과 마음과 정신과 위치와 존재 의미까지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기억하고 싶은 말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쟁하지 않는 나라 A House Undivided  (0) 2022.09.14
영혼 치유  (0) 2022.09.14
고래 이야기 Whale Of A Story  (0) 2022.09.13
친구의 전화 한 통  (0) 2022.09.13
주님의 이름을 믿음 Trust In His Name  (0) 2022.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