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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께 피하라

by manga0713 2023. 12. 14.

[ 김선우 작가 : Blossom ]

 

 

 

본문말씀 : 시편 14편 1-7절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3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여호와를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5 그러나 거기서 그들은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였으니 하나님이 의인의 세대에 계심이로다 6 너희가 가난한 자의 계획을 부끄럽게 하나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7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나오기를 원하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포로된 곳에서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고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 지울 수 없는 신 의식 >

 시편 14편은 무신론자의 어리석음을 질책한 다윗의 시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다(1절). 무신론자는 ‘똑똑한 바보’란 뜻이다. 사람에게 하나님 의식이 없어지면 반드시 부패하게 되고 가증한 소행이 나온다. 도스토옙스키는 말했다. “만약 신이 없다면 사람은 자기가 최종 심판자인 줄 알고 어떤 일도 벌일 수 있다. 신이 없다는 말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무신론이 무엇인가? 양심을 거스른 죄악이다. 무신론자는 “하나님은 있다!”라고 소리치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하면서 “하나님은 없다!”라고 애써 부인하는 사람이다. 무신론자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하나님 의식을 애써 지우려는 사람이다. 인간에게는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는 신 의식이 있다. 죽음이 존재하는 한 신 의식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또한 무신론은 자기 죄를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을 부인하면 절대적인 가치가 없게 되고 상대적인 가치만 남으면서 도덕과 윤리 의식도 희미해진다. 그래서 무신론 사회는 도덕과 윤리가 말살되고 성도들을 핍박한다. 무신론자들에게 하나님을 믿고 절대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거추장스럽겠는가? 그래서 핍박하는 것이다.

 또한 무신론은 심판의 두려움에서 도피하려는 것이다. 무신론은 부도덕한 삶도 조장하지만 무책임한 삶도 조장한다. 무신론자는 사람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자기를 보호하는 신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즉 신이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두려움 때문에 신을 만든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무신론을 만든 것이다. 결국 무신론은 악인의 자기 방어 논리다.

< 하나님께 피하라 >

 안타까운 사실은 교인 중에도 무신론자가 꽤 많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실체적 무신론자’라고 한다. 실체적 무신론자도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고 하나님 얘기도 잘할 수 있다. 그러나 사는 모습은 하나님이 없는 사람처럼 산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것 같은데 가정이나 일터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산다. 그러면 겉으로는 멀쩡하고 편해 보여도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은 떠나지 않는다.

 사람은 강철 영혼이 아니다. 믿음이 있어도 문제와 질병과 고난으로 얼마든지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그 두려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문제의 수렁에서 건지시고 즐거움과 기쁨을 회복시켜 주신다(6-7절). 하나님은 ‘여리고성의 승리’도 허락하시지만 ‘아이성의 패배’도 허락하신다. 높아진 마음이 낮아져야 하나님께 돌아설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하는 것’과 ‘실패자가 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실패했어도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면 오늘의 실패가 내일의 성공이 된다.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예수님께 가면 용서받고 새로워지고 은혜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죄를 지었을 때 무신론으로 도망가서 “하나님은 없다!”고 하지 말고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영접해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을 누리라. 예수님을 거절하면 언젠가 임할 무서운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죄인이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님은 변호사로서 그를 감싸주시지만 예수님을 거절하면 어느 날 예수님을 심판주로 만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불신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실체적 무신론자는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새롭게 다짐해야 한다. 지금도 구원의 즐거움과 기쁨이 넘치는 복된 삶의 가능성은 크게 열려 있다. 그러므로 살아가면서 두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피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얻어 누리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