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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내 고향 충현교회 시절

by manga0713 2012. 10. 3.




장인 어른, 처 할머니, 처 외할아버지, 처 외할머니께서 함께 계시는 충현 동산에 다녀왔다. 김창인 원로목사님의 소천 소식으로 마음과 발걸음이 가벼울 수 없었다. 신앙인을 떠나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처가는 장인 어른의 병환 중에 장모님의 꿈 속에 보여졌던, "강남에 있는 돌로 지은 교회"로 온 가족이 출석하기 시작했다.


모태신앙인이셨던 장모님께서는 결혼 후 교회를 출석하지 못하셨다. 아마도 처 외할머니의 끊임없는 기도가 장모님의 꿈을 이끌어 낸 힘이였으리라.


나는 지금의 아내와 연애중이던 때라 점수를 따기 위해서라도 군말없이 충현교회를 따라 출석했다.

그때까지 아내는 내가 어린시절부터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예배도 열심이었고, 찬양도 열심이었고 기도도 열심이었다.

수요예배, 주일예배, 본당 지하의 기도실, 광주의 충현기도원, 정말이지 열심히 뛰어 다녔다.

당시 나는 신앙 체험도 했었는데, 예배중 조는 중에 한 빛이 도로를 타고 달려와 내 이마의 정중앙에 들어와 박히는 꿈이자 체험을 한 것이다.


나중에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그 불빛은 구의동, 처 외할머니께서 사시는 곳에서 나와 충현교회를 향하는 길(잠실대교, 테헤란로, 충현교회)을 달려와 그대로 내게 박힌 것이었다. 처 외할머니께서는 말씀의 은사를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돌아가시기전까지도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던 처 외할머니의 큰 은혜이다.


새신자부를 통하여 성경과 찬송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나와 아내, 처가 식구 모두 세례를 받았다.

나는 아마도 두 번째 세례였던 것 같다. ㅋㅋ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렇게 하고 싶었다.

실로 나는 "거듭 난" 것이다.


장인 어른께서는 이 기간 중에 소천하셨다.

아직 결혼 전이었던 나는 작은 처남 대신 임종을 지키는 축복을 받았고, 입관시 천사의 미소를 띠신 장인어른의 마지막 모습을 가슴에 새기는 기쁨을 누렸다.


'사랑부'라는 장애우들의 예배부에서 아내와 나는 봉사를 시작했다.

우리부부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처음 불리우기 시작한 때이다.


당시 나는, 아니 우리부부는 "소석관"을 오가는 것이 정말이지 영광이요 떨리는 기쁨이었다.

"소석"은 김창인 원로목사님의 호로 기억한다.


그렇게 '사랑부' 봉사를 마친 우리부부는 '고등부' 예배의 반사로 봉사를 시작했다.

1976년생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이니까....벌써 20년 전이다.


여기서 나는 "거듭남"의 실제를 경험했다.

평생을 마음 속에 품고가는 '친구'도 만났다.


우리부부는 이 고등부 봉사 첫 3년 간, 한 주도 빠짐 없이 금요철야예배를 참석했고 또 그 밤에 기도원에 올랐었다. 우리의 모든 것이 감사했고 우리의 모든 열매의 감격이 우릴 끊임없이 무릎꿇게 했던 것이리라...


당시 이종윤 목사님께서 해임 당하시는 일이 있었다.

우리부부는 이종윤 목사님을 믿었고 따라 갔었다. 구역담당 목사님(당시 사랑부 담임이시기도 했었다.)께서 득달같이 달려와 그래선 안된다고 했다. 나는 나의 행동은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목사님께서는 책임진다는 말은 어리석은 이야기라고 했다. 몇주 후 우리는 돌아왔다.


그렇게 또 몇 년이 흘렀다.

그 기간 중에 신성종 목사님께서 오셨다 가셨다.

그때의 나는 책임진다는 어리석은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또 다른 한 분이 오셨다.

교회와 아이들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나는 다윗과 사울을 예를 들며 "사람을 반대해선 안된다.", "잘못된 절차를 반대해야 한다."라고 했다. "사람은 세월이 흘러 성령의 열매를 보며 판단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996년 2월 15일 오전 11시, 충현교회 갈릴리홀에서, 우리 부부는 결혼 했다.

고등부 첫 3년동안 3천재단을 쌓았던 그 곳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고등부와 당시에는 대학생이 된 아이들의 축복 속에서 하얀드레스의 아내와 하얀턱시도의 나는 결혼을 했다.


김창인 원로목사님의 주례사는 항상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례사를 통해 그 결혼예배를 통해 결신하는 사람이 많았었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두 분이 이루는 새 가정은


1. 하나님을 높이는 가정

2. 가문을 빛내는 가정

3. 평균 점수를 높이는 가정

4. 범사에 분수를 지키는 가정

5. 후손에게 복을 물려주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다섯가지가 골자다. 이 다섯가지는 인쇄, 코팅되어 결혼서약에 사용됐던 성경 표지에 붙여진 채로 새 가정을 이루는 부부에게 선물된다.


이 후 7년 동안 우리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지금의 아들은 7년 만에 허락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기간 동안 장모님과 장모님의 기도 친구들께서 한 주도 빠짐없이 기도원에 올라 기도를 해 주셨다.


아들이 첫 번째로 교회에 나올 때 기도를 해 주셨던 집사님 권사님들께서는 아들의 모습을 보지도 않고 아들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그분들 말씀은 기도한대로 나왔다고 한다.


아들 또한 충현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평생의 친구인 아무개.

고등부 교사로서 첫번째 겨울 수련회에서 만나(충현기도원이었다.) 지금까지 뜸한 연락으로 신뢰를 주고받는 나의 친구(이 친구는 내가 얼마나 자기를 의지하는 지 모를거다.).


이 친구는 정말이지 죽다 살았다.


예배 후 교회 계단에서 나의 팔을 붙들고 내게 한 말,


"친구야 나를 위해 기도 해 다오, 나 아프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등골에 땀이 흐르고 수다스런 내 입은 아무런 말도 뱉질 못했다.


"하나님, 얘 좀 살려주세요!" 이게 내 기도의 전부였다.


그렇게 무지렁쟁이인 나를 키운 곳이 충현교회다.

나의 가치관, 나의 지식의 기반, 내 스토리텔링의 주식과 반찬 모두 충현교회에서 채워진 것이다.


충현교회가 아니었으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오늘 2012년 10월 2일 04시, 김창인 원로목사님께서 소천 하셨다.


일찍 아버지를 여윈 내게, 아버지와 같은 이북 사투리를 쓰시는 목사님, 아버지와 같은 말투를 가지신 분들이 많은 충현교회는 내게 고향이요, 목사님께서는 내게 아버지셨다.


그렇게 정을 두고 다니고, 사랑으로 열심을 발했던 곳이 충현교회이다.

그런 우리부부에게도 아픔의 시절은 열심을 줄어들게 했고, "어렵게 얻은 아들을 위해"라는 변명 속에 교회를 떠나 방랑하다 현재 분당우리교회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세월은 변함없이 흐르고, 흘러감 속에 충현교회와의 멀어짐도 간격을 더해갔지만, 향수는 깊어만 갔다. 깊어지는 향수는 마음을 딱딱하게 하는가보다.


원로목사님께서 교회와 아들과의 모든 것을 회개하실 때도 나는 고향 충현교회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않았었다.

장모님만 홀로 남겨 둔 채로 분당우리교회를 출석하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나는 장모님을 모셔 올 생각만 하고 있었지 고향 충현교회에 대한 생각은 애써 밀어두고 있었다.


"밀어둠"

충현교회에 대한 생각을 "밀어둠"은 아마도 많은 충현교회 출신들의 불문율이리라....


현재의 교회에서도 충현교회 출신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성가대에서 바라보는 교인들 사이, 1층 저 곳에, 2층 저 곳에, 체육관, 서현 교육관 여기 저기.....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하기도 하고 낯익은 눈빛도 나누지만, 가슴 속 "밀어둠"은 서로 꺼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순전히 내 생각이겠지만 그렇다.


김창인 원로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안고 충현 동산에 함께 계시는 어르신들을 뵙고 왔다. 장인 어른의 묘지 쑥을 뽑고 비석을 어루만지고, 처 외할머니 묘지 앞에서 속도 내어 보이고, 처 할머니의 묘지에서 농담도 건네다 왔다.


목사님께서도 이 곳에 오실건가? 오셨으면 좋겠는데.....


처음으로 교인으로서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를 깊게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원로목사님의 숨결이 녹아 있는 주례사도 되새겨 본다.


평생의 친구인 아무개와 함께 했던 장난과 같던 약속도 떠 올린다.

"나는 기도원 종치기가 되련다. 우리 은퇴하고 교회 사찰집사로 명을 다하자."


이 사랑이 우리만의 사랑이 아니리라.

이 사랑이 사람인 우리의 속에서 우러나온 것 만은 아니리라.

사람의 도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사랑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리라......


날 밝으면 장모님께 조심히 여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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