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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사라 폴리] 지워져 가는 기억 속의 하나가 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Away From Her"

by manga0713 2010. 12. 21.



알츠하이머 : 퇴행성 뇌질환으로, 노화의 과정 속에서 뇌조직이 기능을 잃으면서 점차 정신 기능이 쇠퇴하는 병이다. 이 병의 특징은 기억력과 정서면에서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피오나와 나, 그랜트는 부부입니다.
18세, 생명의 광채를 내던 그녀가, "우리 결혼하면 재미있겠지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넙죽받아 광채로 뛰어들었죠, 그 후 44년 동안 우리는 떨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날인가부터 피오나의 광채는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에게 익숙했던 것들이 전혀 낯선 것들로 다가서기 시작한 것이죠.
그녀도 무진 애를 쓰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체념의 속도가 적잖은 충격인 것 같습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음과 인정해야 함 속에서 갈등을 합니다.
아무런 말 없이, 흔들리는 믿음을 가다듬으며 그녀 곁에 서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생명의 광채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채로 뛰어들었고, 그렇게 지금까지 하루도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변함없는 일상인 듯이, 그녀와 했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아니 행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나의 긴장의 끈과, 흔들리는 믿음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이성이 나를 괴롭힙니다.

그녀가 이야기 합니다.

"내가, 사라지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어요."
- 사실 나는 그녀의 사라짐과 같이 그녀의 기억 속의 나와, 나와의 날들이 사라질까 두렵습니다. 아니, 그 두려움들이 확인되어 갈 것이 두렵고, 아픕니다.

"바로, 이게 현실이예요.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는."
- 그녀가 비로소 체념의 속도에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내 마음 속에서 나를 괴롭히던 그 소리, 절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내 사랑 피오나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아프지만, 소리쳐 울어보고 싶지만, 그저 변함없는 모습으로 곁을 지켜내는 것이 내가 가야할 길입니다.

"걱정말아요, 나도 내가 어찌될지 아니까..."
- 그 사람에게는 생명의 광채가 있었습니다. 나는 그 광채로 뛰어들었고, 그렇게 44년을 한 몸과 같이 살아왔습니다. 나도 내가 어찌될지 압니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틀리기를 바랍니다.

그녀는 나를 위해 떠날 결심을 한 것입니다.


요양원, 30일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규칙. 그 모든 것들을 부수고싶도록 화가 나지만, 그럴겨를이 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녀의 그랜트이고 그녀는 여전히 나의 피오나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다른 사람의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현재의 자신이 기억 속의 자신인 것인지, 오늘의 자신이 어제의 자신인 것인지의 확인은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녀에겐 지켜내야 할 사람이 있고 그것에 충실한 것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그를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압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녀를 몰랐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압니다. 혹시 그도 그녀와 같은 믿음을 가진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내게 벌을 내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파할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의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행복과 위안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선물을 해야겠습니다.


'Away From Her''사라 폴리' 감독의 2006년 작품입니다. 어느 노부부에게 찾아 온 알츠하이머라는 병이 기억을 앗아가는 과정과 사랑과 믿음으로 상실된 아픔을 채워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남편인 그랜트 앤더슨 역에는 고든 핀센트, 부인인 피오나 앤더슨 역에는 줄리 크리스티, 요양소의 피오나의 상대역인 오브리 에는 마이클 머피, 그의 실제 부인 마리안 역으로는 올림피아 듀카키스가 나와 인생의 깊은 경험에서 나오는 열연을 보여 줍니다.

개인적으로 상실되어져 가는 아픔을 호흡과 눈빛과 지친 뒷모습으로 보여 준 고든 핀센트의 연기가 기억의 자리에 분명하게 자리를 잡았고요, 아내 피오나 역의 줄리 크리스티는 이 작품을 통해서 연기 상을 받게 됩니다.

줄리 크리스티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닥터 지바고'에서 '라라'역을 맡았던 배우 입니다. ^^

깊은 겨울 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면서, 서로를 향한 신뢰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를 더 하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