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항상 감동이다.
"어쩜 이리도 맛깔나는 글을 쓰실까.", "어쩜 이리도 내 삶의 모습을 그려내실 수 있을까.", "어쩜 이리도 우리네 사는 모습을 담아낼 수 있을까." 등등등
그런 마음의 존경과 동경과 가까움을 가지고 있는 내게 이 책과의 만남은 말 그대로 우연이 주는 선물이었다.
고객사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한 길은 바로 가는 것이고, 또 한 길은 돌아 가는 것이다.
멍한 걸음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게 된 그날, 갈아 타려 내려야 할 정거장도 하나 전에서 내리 게 된 그날.
내 눈 앞에는 "알라딘 중고 서점"이 입 벌려 유혹하고 있었다.
내려가 짐짓 든 것이 많은 듯 눈을 희번덕거리다 만난 것이 이 책이다.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이라는 것 또한 기쁨 그 자체인데 더군다나 '묵상집'이라니...
이 책은 위에서 말한 박완서 선생님에 대한 나의 탄복, "어쩜, 어쩜, 어쩜~"이
아마 하나님께서도 이렇게 조곤조곤 이야기 하는 당신의 자녀가 더욱 예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수다쟁이가 아닌 조곤조곤 이야기 하며 예쁨받는 자녀이고 싶다.
다음은 이 책의 밑줄 친 내용이다.
- 열심히 사느라고 살았건만 문득 뒤돌아볼 때, 도무지 산 자취 없음은 생애를 스쳐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오묘한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 신앙에 있어서 발전보다는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제 소망
- 나 는 이렇게 답답할 만큼, 어떻게 보면 무지막지할 정도의 과학의 신봉자건만 예수님이 서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걸 믿을 뿐 아니라, 나도 베드로만큼은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자신하고 있다. 사람이 아무도 서서 물 위를 걸을 수 없다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안 죽을 수 없다는 것만치나 예외가 없는 진리건만 감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건 체험 때문이다. 그럼 내가 물 위를 걸은 체험을 했다는 소리로 들려 혹시 웬 황당한 교만이냐고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살면 살수록 인생이 고해 바다라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감이다. 바다가 공포스러운 것은 기상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허무의 심연, 불운의 암초, 불안의 노도, 절망의 농무, 자포자기의 격랑 또한 무수히 맞닥뜨려야 한다. 아직도 익사하거나 떠내려가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다움이나마 유지한 채 거의 피안을 바라보게 되었음은 아슬아슬한 고비마다 손을 내밀어준 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건 나의 가장 값진 신앙 체험이다.
- 사람이 생긴 것이 각각인 것처럼 타고난 능력이 다르다는 것은 결코 불공평이 아닙니다. 똑같은 것끼리는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것뿐입니다. 조화를 이룰 때 다른 것끼리는 비로소 평등해집니다.
- 당신의 부활을 얼굴보다는 상처로 증명해 보이신 주님, 당신의 현존을 높은 데서보다 낮은 데서, 잘난 이들 가운데서보다 박해받는 이들 가운데서 느낄 수 있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마 음을 비우라고 말하긴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음을 비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음을 비운 상태는 도대체 어떤 상태일까 상상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마음을 비운 상태를 지갑을 비운 상태보다 더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웃 사랑은 이웃과 입장을 바꾸어 내 일처럼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억지로 지어먹은 마음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 된다.
- 부 정의 고비를 수없이 겪고 난 지금, 적어도 하나님이 계시긴 어디 계시냐는 소리는 안 하게 됐다. 그동안의 어떤 몸부림도 어떤 저항도 다 그분의 뜻, 그분의 손바닥 안에서의 일이었다는 걸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내가 애타게 도움이나 해답을 구할 때마다 그분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남들은 계시나 응답도 잘 받는다는데 나한테는 한 번도 그런 신비체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침묵은 답이 아니었을까. 아니다. 나에게 가장 적절한 해답을 바로 침묵이었다. 나는 내 안에서 해답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때 비로소 내 안에 그분이 같이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 샘 물이 목마름을 만나지 못한다면 샘물의 가치가 어디 있겠습니까.~ 목마름의 고통을 겪은 자만이 샘물에 감사할 줄 안다는 걸 복음은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샘물은 목마른 이들을 위해 준비돼 있다는 것도요. 샘물은 결코 인색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선 병을 고쳐주시고 나서도 '내가 너를 고쳐주었으니 내 은혜를 잊지 말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뽐내는 일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한결같이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하십니다. 겸손도 이쯤 되면 신의 겸손이라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 신앙인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오류도 해방의 소식을 도리어 억압의 수단으로 삼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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