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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철도원 [아사다 지로]

by manga0713 2011. 11. 21.

 



철도원.
맞습니다. 영화 '철도원'의 원작 입니다. 철도원, 러브레터 등 8개의 이야기를 한 묶음으로 한 책이지요.

지은이는 '아사다 지로'인데요.
이 분은 야쿠자 출신이라고 하네요.
이 책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아사다 지로에 대한 평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 대부분인데요.
단지 이야기 꾼만이 아니라, 사람의 아픔을 다룰 줄 아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의 두번째 이야기 'Love Letter'중의 한 대목을 보실까요. 이 Love Letter는 우리에게 '파이란'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고로 씨에게.

아무도 없는 사이에 살짝 편지 쓰고 있습니다. 누운 채로, 한 쪽 손으로, 서투른 글씨 미안합니다.
병원에 오고 나서 계속 이야기 안 합니다. 일본말로 이야기하면 여러가지 물어보니까 중국말 이야기 합니다.
나는 분명 죽습니다. 일본말 모른다고 생각해서 의사들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는 여자들 많이 봤으니까 나는 압니다. 순서가 왔을 뿐.

친절한 간호사, 열심히 한자를 써서 내게 보여주며, 가족의 전화번호를 물어봅니다.
사다케 씨 전화번호 알려주고 말았습니다. 미안합니다. 어차피 경찰은 알 거라고 생각하니까.
고로 씨에 대해 나 잘 압니다. 경찰이나 출입국 관리청에 잡혀갔을 때를 대비해 주소라든가 나이,
성격, 버릇, 좋아하는 음식 같은 것, 사다케 사장님이 적어준 것 전부 외웠습니다.
잊어버리지 않게 날마다 읽었습니다.

사진도 갖고 있습니다. 같은 거 넉 장입니다.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잊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고로씨가 아주 좋아졌습니다. 좋아지면 일하기가 괴로워집니다. 일하러 가기 전에 항상 미안합니다 말합니다.
하는 수 없지만, 미안합니다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 갚으면 고로 씨하고 만날 수 있을까요. 고로 씨랑 함께 살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안됩니다.

고로 씨, 항상 벙실벙실 웃고 있습니다. 담배 안 피웁니다. 술 조금 마십니다. 싸움하지 않습니다.
고기 싫어하고 생선 좋아하지요. 그래서 나도 담배 끊었습니다. 술도 조금, 고기 안 먹고 생선 먹습니다.

손님들 모두 친절하지만, 일하면서 고로 씨 잊지 않습니다. 진짜입니다. 손님을 고로 씨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열심히 되어서 손님이 기뻐합니다.

고로 씨 태어난 곳, 바다 바로 옆이지요. 여기에 왔을 때, 근처인가 하고 지도에서 찾았습니다.
너무나 멀어서 실망 했습니다. 그러나 나와 똑같아요. 먼 곳에서 일하러 와 있는 고로 씨, 나와 똑같아요.

내가 죽으면 고로 씨 만나러 와줍니까.
만약 만나면 부탁 한 가지만.
나를 고로 씨 묘에 넣어주겠습니까. 고로 씨의 아내인 채로 죽어도 좋습니까. 무리하게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고로 씨 덕분에 일 많이 했습니다. 고향 집에 돈 많이 부쳤습니다. 죽는 것 무섭지만 아프지만 괴롭지만 참습니다.
부탁 들어주세요.

바닷소리 들립니다. 비 옵니다. 아주 캄캄합니다. 누운 채, 손 한 쪽으로만, 서투른 글씨 미안합니다.
고로 씨가 정말 좋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누구보다 고로 씨가 좋습니다. 아픈 거 괴로운 거 무서운 거가 아니라
고로 씨를 생각해서 울고 있습니다.

항상 그랬지만, 친절한 고로 씨 사진 보면 눈물이 나옵니다. 슬픈 거 괴로운 거가 아니고 고맙다로 눈물 나옵니다.

고로 씨에게 드리는 거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합니다. 그래서 말만, 서투른 글씨로,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누구보다.
고로 씨 고로 씨 고로 씨 고로 씨 고로 씨 고로 씨 고로 씨.
짜이쩬(再見). 안녕.
............

--편지 중간부터 고로는 소리를 내어 울었다.

전 이 편지를 읽으며 마치 제가 이 두사람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편지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았고, 이들의 눈물의 의미를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저 슬프고 아려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이 두사람이 가지고 있는 슬픔과 아픔의 기저를 알고 있기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었습니다.

아사다 지로의 책 '철도원'은 바로 이런 책입니다.

잊은 듯 잊혀진 듯 살아 온 우리네의 감춰진 눈물의 의미를 기억나게 하고 그럼으로 실컷 울어 시원해진 가슴으로 "그래 다시 살아보자!"하며 일어서게 하는 그런 책입니다.

철도원 - 1997년 제117회 나오키상 수상작
국내도서>소설
저자 : 아사다 지로(Jirou Asada) / 양윤옥역
출판 : 문학동네 199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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