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 인터넷교보문고]
시한부를 선고 받은 사노 요코가 좋아하는 담배를 끊지 않고 멋들어진 승용차를 쇼핑해서 타고 다니는 초월에 다들 박수를 보낸다. 개운치 못한 집착을 뛰어 넘은 그것에 나 또한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어릴 적에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게 된 유리구슬 하나를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을 때 느꼈던, 어쩔 도리 없는 쓸쓸함과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린 나의 작은 우주에서 소중한 물건이 사라질 때면 그 물건이 어딘가에 섞여 들었다가 다시 나온다거나, 오빠가 장난으로 훔쳐간 것이라서 결국 호주머니에서 발견된다는 식의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의 작은 우주에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감정은 소중한 물건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 쓸쓸함이었다."는 그녀의 회상처럼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 '내'가 홀로 지워진다는 사실, 죽음은 그녀에게 "맹렬한 외로움"이었고 "어쩔 도리 없는 쓸쓸함"이었다.
"맹렬한 외로움"과 "어쩔 도리 없는 쓸쓸함"은 아마도 모든 사람이, 아니 바로 내가 죽음 앞에 갖게 될 "거멓게 뻥 뚫린 구멍"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 한 말이 아닐까!
사노 요코는 이 책에서 남겨진 모든 이들에게 "맹렬한 외로움"과 "어쩔 도리 없는 쓸쓸함"을 채워가는 또 다른 방법을 몸소 보여준다.
"사람은 죽을 때 까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 준 것이다.
다음은 이 책의 밑줄 친 부분이다.
나는 용서할 수 없었다. 당신은 공무원이니까 몇십만 엔이나 받잖아. 그건 우리가 낸 세금이라고.
허공에 떠버린 연금 중 내 돈도 들어 있다니 사회에 참여하는 기분이다. 그것참 자랑스럽다.
가뜩이나 노인이 된다는 건 장애인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
나는 거의 일평생을 지구와 평행하게 살아왔다. 드러누워서 책이나 텔레비전, 빌려온 비디오를 보았다.
보도라면 그게 무엇이든 조심했다.
비겁함이 가장 나쁘다.
옛날에는 노인의 자리와 역할이 있었다.
아마도 정치가의 시선이 닿는 장소에서 연금 6만 엔을 받는 서민들이 서성거릴 일은 없겠지. 어쩌면 정치가들은 진짜 서민을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다.
노인들은 일하던 시절에 세금을 냈다. 지금은 공무원들이 그 세금으로 한평생 여유롭게 살아간다. 공무원들은 낙하산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2년간 일한 다음, 퇴직금으로 몇천만엔씩이나 받고 다른 회사로 옮겨서 또다시 퇴직금을 받는다.
교사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칭하면서부터 일본의 교육이 이상해졌다.
노인은 망상으로 마음껏 두근거릴 수 있는 특권계층이다.
내 시빅은 이제 곧 주행거리 10만 킬로미터를 돌파할 참이었다. 너덜너덜한 만신창이지만 바지런히 잘 달려서, 차라기보다 오랜 세월 길러 온 애견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모두들 꺼려하는 여자와 어울리는 관대한 나 자신'에 도취되고 싶다는 몹시 불순한 마음으로 우쭐대며 그녀와 만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아, 혐오스러운 나 자신.
그녀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반응한다.
나이 드니까 욕심이 없어져. 욕심은 젊음인가 봐.
동물들은 고독을 견디는 강인하고도 적막한 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은 고독한 눈을 잃어버렸다.
장남을 잃은 엄마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오빠를 잃은 여동생인 나를 동정하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분해서 우는 눈물에는 상쾌함이 없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죽어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세계는 점점 쓸쓸해진다.
사람은 죽음과의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한 말인데요, 죽음에 대한 감상에도 1인칭, 2인칭, 3인칭이 있다는군요. '그,그녀(3인칭)의 죽음'은 아, 죽었구나 정도로 별로 슬퍼하지 않아요. 반면 2인칭인 '당신의 죽음(부모, 자식, 형제 등)'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죠. 그래도 그건 자신의 죽음이 아니예요. 1인칭의 죽음, 즉 '나의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인 데다 남들한테 물을 수도 없으니 어려운 거죠. 의사에게 환자의 죽음은 어떤가 하면, 그, 그녀의 죽음처럼 3인칭은 아닙니다. 환자와의 관계가 있으니 2인칭도 아니고 2.5인칭 정도일까요.
단지 숨을 쉬기만 하면 좋은 걸까요. 인생의 질이라는 문제도 있잖아요. 무엇보다도 목숨이 소중하다는 건 이상해요.
죽음에는 논리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나는 학교 선생과 의사가 너무 싫다. 그 치들의 눈높이는 우리와 같았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사람과 그 가족들의 침묵이 문 건너편에 덩어리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냉정하고 침착한 사람이라도, 생각의 가장 안 쪽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본인조차 알 수 없다.
환자의 언어 건너편에 있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누구도 부닥쳐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성이나 언어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맹렬한 외로움이 나를 꿰뚫고 지나갔다.
어릴 적에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게 된 유리구슬 하나를 아무래도 찾을 수 없었을 때 느꼈던, 어쩔 도리 없는 쓸쓸함과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린 나의 작은 우주에서 소중한 물건이 사라질 때면 그 물건이 어딘가에 섞여 들었다가 다시 나온다거나, 오빠가 장난으로 훔쳐간 것이라서 결국 호주머니에서 발견된다는 식의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의 작은 우주에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감정은 소중한 물건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걸 깨닫는 쓸쓸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죽고 싶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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