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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나는 무력하지 않다

by manga0713 2022. 4. 13.

[ 산드로 보티첼리 : 모세의 생애 ]

 

 

본문말씀 : 출애굽기 32장 11-14절

 

11 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 모세의 중보기도 >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이 주는 교훈이 있다. 첫째, 봐야만 믿으려고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이 더 복된 믿음이다. 둘째, 지도자를 숭배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위대한 인물이 되려고 하되 위대한 인물을 숭배하지는 말라. 셋째, 물질과 재능을 오용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과 재능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처럼 불행은 없다. 넷째, 쾌락에 빠지지 말라는 교훈이다. 쾌락으로부터 자신을 힘써 지키라.

 금송아지 사건 전까지만 해도 아론은 자기 역할을 잘 감당했다. 그러나 스스로 주연이 되려고 하면서 조금씩 빗나가다가 금송아지를 만드는 결정적인 죄를 지었다. 물론 상황이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모세의 시내산 기도가 길어지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백성들이 하나님을 보기를 원해서 보이는 신을 만들라고 압박했기에 그 백성들의 소리에 굴복해 결국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었다. 게다가 금송아지 앞에서 축제까지 벌였다.

 그때 하나님이 진노하시며 모세에게 말씀했다. “내 백성이 부패했다. 나의 길을 떠나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는 이 백성은 목이 곧은 백성이다. 내가 그들을 진멸하겠다.” 아주 단호한 말씀처럼 들리면서 백성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듣고 “다 틀렸다. 다 끝났다.”라고 하면서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는 그 끝난 것 같은 상태도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다.

 하나님의 단호한 말씀을 듣고 모세가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의 뜻을 돌이킬 수 있음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켜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11-13절). 그러자 바로 이런 말씀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14절).” 성도가 세운 뜻과 선택은 하나님이 세운 뜻과 코스마저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성도는 결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 나는 무력하지 않다 >

 하나님은 때때로 어떤 사람을 어떤 곳에 보내 거기서 위대한 일을 이루길 원하신다. 그러면 가끔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 저는 아직 부족해서 못하겠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것은 필요하지만 나의 부족함만 보지 말라. 부족해도 이렇게 반응하라. “하나님! 저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뜻이라면 해보겠습니다. 잘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를 주소서.” 스스로는 무력한 존재라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가는 사람은 결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모세도 처음에는 자기는 부족해서 못한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멋지게 일하셨다. 그처럼 하나님이 어떤 일로 부르시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혼자 계획하며 인간의 방법 중심적으로 일하면 큰일을 못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중심적으로 일하면 얼마든지 큰일을 할 수 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정직하게 살면 나는 결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 나를 결박한 원수의 손에서 풀리고 즉시 역전이 되어 오히려 원수를 결박할 수 있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바른 뜻을 세우면 엄청난 능력이 생긴다. 기독교는 운명론적 종교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면 미래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심지어 나의 선한 결단은 하나님의 뜻도 바꿀 수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나? 모든 게 하나님의 마음이지.” 물론 하나님의 전체적인 섭리와 뜻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설정하신 수많은 어려운 훈련 코스들은 나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얼마든지 면제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사람은 결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만들어가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