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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소통의 프로가 되라

by manga0713 2019. 5. 29.

 

 

 

 

본문말씀 : 창세기 3장 11-15절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소통의 프로가 되라 (창세기 3장 11-15절)

< 죄로 인한 인간관계 단절 >

 본문 앞 11-12절을 보면 아담과 하와의 둘 사이에도 금이 갔다. 당시 에덴에는 아담과 하와 둘만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 둘 사이에 단절과 갈등이 생긴 장면도 죄의 치명성을 잘 말해준다. 아담이 처음 하와를 보았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적으로 받을 수 없게 하는 상대가 생겼지만 어떤 경쟁도 없었고 참 행복이 있었다. 그처럼 상대가 있어도 행복을 누리는 삶이 천국 삶이다.

 상대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정치 세계에서 여당은 “저 야당 없어졌으면...” 하고 야당은 “저 여당 없어졌으면...” 한다. 그러나 상대가 없어지면 잠깐은 편해도 삶의 발전도 없고 보람도 없다. 행복이란 상대의 존재 속에서 내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런 행복이 있었는데 범죄 후 하나님이 선악과 따먹은 것을 추궁하자 아담은 “저 여자 때문에 그랬습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었다. 죄로 인해 인간과의 단절이 생긴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단절의 원인은 죄 외에는 다른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만약 배가 파선되어 무인도에서 부부만 살아남았다면 둘이 싸우겠는가? 원수끼리 살아남았어도 싸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원수들이 서로 죽기만 바라고 있었어도 무인도에서는 고독의 무서운 고통을 생각하며 원수가 죽어갈 때도 “어떻게 하면 저 원수를 살릴까?”에 몰두하고 원수가 병들었다면 지극정성으로 간호할 것이다.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사실상 모든 사람은 무인도에 사는 것과 다름없다. 원죄로 인해 말과 마음이 완벽하게 통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이 세상은 무인도와 같은데 그처럼 무인도에 살면서 왜 서로 아껴주지 않고 싸움이 많은가? 아직 자기 죄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기 때문이다. 무인도와 같은 세상에서 말과 마음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그런 대로 통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과 교회를 이루고 사는 것을 생각하면서 가족과 교우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라. 그 행복이 축복을 낳는다.

< 소통의 프로가 되라 >

 하나님은 인간이 죄로 인해 심판받아 죽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시지 않았다. 그래서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다. 그 미래의 역사가 본문 15절에 나오는 사탄에게 내린 심판에 암시되어 있다.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 예수님의 발꿈치를 잡았지만 그 십자가는 자기 정수리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계획인 줄 몰랐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면 받은 존재다. 예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깊이 감사하라. 갈보리 십자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고 이 땅에서도 온갖 단절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단절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성령님으로 오셔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며 외로움의 상처를 치유해주셨다. 성령님은 외로움의 상처도 치유해주지만 그 외로움의 기간을 가장 복된 기간으로 만들어주신다.

 필자는 ‘외로움’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미국에서 힘들게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가 떠오른다. 그때 하늘의 비행기만 보면 우리나라에 돌아오고 싶어서 가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왜 그렇게 심하게 외로움을 탔는지 그때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이유를 알았다. 그때 성령님이 필자를 찾으신 것이었다. 그때 마치 성령님과 연애하는 것처럼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했었다. 성령님은 외로울 때마다 그분의 존재를 더욱 뚜렷이 나타내며 외로움을 달래주신다. 성령님의 함께 하심을 힘입고 현실 속에서 단절의 삶을 극복하고 소통의 프로가 되라.

 특히 다음과 같은 4가지가 통하는 사람이 되라. 첫째, 하나님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둘째, 인간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라. 이웃을 사랑하고 그의 허물과 단점을 용납하라는 뜻이다. 셋째, 환경과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라.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을 남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넷째, 자기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되라. 마음의 상처와 한에 너무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게 단절의 삶을 극복하고 소통의 프로가 될 때 형통의 문도 활짝 열릴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