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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by manga0713 2022. 8. 12.

[ 도메니코 페티 : 이 사람을 보라 ]

 

 

 

본문말씀 : 마태복음 5장 3절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 >

 

1. 평안이 주어진다

 심령이 가난하면 더 이상 자신을 가장하려고 하지 않기에 평안과 안식을 얻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행복하려면 완벽하게 살라!”고 하지 않는다. 완벽한 존재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심령이 가난하면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자체로 행복을 느낀다. 결국 심령의 가난은 천국 평안을 소유하는 열쇠이다.

 한 성도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 민족주의자였다. 특히 일본 얘기나 중국 얘기만 나오면 이를 갈고 미워했다. 어느 날 그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신기한 일이 생겼다.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그 마음 위에 타 민족도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다. 그때 타 민족에 대한 미움도 큰 죄인지를 깨닫고 회개한 후 천국 평안을 얻었다. 민족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 ‘심령이 가난한 마음’은 ‘선교하는 마음’이고 그런 ‘선교하는 마음’이 있을 때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는 평안이 주어진다.

2. 인간관계가 깊어진다

 사람은 대개 거만한 심령을 싫어한다. 거만한 사람과 식사약속을 하고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대개 겸손한 심령을 좋아한다. 겸손한 태도와 언어로 동료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면 공동체가 큰 힘을 얻는다. 그처럼 겸손해도 환영받는데 심령의 가난은 겸손 이상의 것이기에 얼마나 환영을 받겠는가? 사람들은 가끔 고민한다. “왜 내게 축복이 적을까? 왜 인간관계가 이렇게 힘들까?” 그런 고민이 있다면 “더욱 겸손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라.

 심령이 가난하면 대화가 통한다. 반면 심령이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면 대화도 막히고 사소한 일에도 시험에 든다. 사오정 시리즈에서 왜 사오정과 대화가 안 되는가?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오정은 자기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잘 묘사한다. 사오정에게는 “나는 사오정이다!”란 생각밖에 없어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처럼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남을 조금 더 생각하고 이해해줄 때 인생이 넉넉해지고 행복이 찾아오고 인간관계도 깊어진다.

3.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

 성경에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의 축복 얘기가 넘쳐 있다. 주님이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고 말씀할 때 기드온이 대답했다(삿 6:14-15). “주님! 제가 무슨 힘이 있어 이스라엘을 구원합니까? 제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저도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게 힘과 능력을 주겠다!”고 하시며 기드온을 멋지게 쓰셨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렘 1:5).” 그때 예레미야가 말했다. “주님! 저는 말할 줄 모릅니다. 어린이 같은 제가 어떻게 그 사명을 이행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내가 네게 말할 것을 주고 너와 함께 하겠다!”고 하신 후 예레미야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사용하셨다.

 축복은 자신의 부족을 알고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주어진다. 결국 행복의 원천은 자신 밖에 있지 않고 자신 안에 있다. 즉 ‘우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축복 가능성은 가난한 심령이 될 때 커진다. 축복은 ‘능력이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드리고 나누고 베풀려는 선교하는 마음은 축복의 최대 원천이다. 사람은 받을 때보다 드릴 때 더 행복을 느끼고 더 축복받는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