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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용서의 원리

by manga0713 2022. 10. 24.

[ 조르주 드 라투르 : 사막의 세례 요한 ]

 

 

본문말씀 : 사무엘상 26장 1-12절

 

...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 용서할수록 복이 축적된다 >

 다윗이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고 얼마 후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었다고 밀고했다(1절). 십 사람의 밀고는 사무엘상 23장에 나오는 1차 밀고에 이어 두 번째다. 그 밀고를 듣고 사울은 다윗을 찾으려고 삼천 명의 정예병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갔다(2절). 1차 밀고 때 자신을 죽일 수 있었던 다윗의 선대로 살았던 사울이 고맙게 여기며 다윗을 축복까지 했었는데 또 정예병 삼천 명과 함께 다윗을 죽이려고 내려간 것이다.

 마침내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쳤을 때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이른 줄 알고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보니까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병사들은 그를 둘러 진치고 있었다(4-5절). 그때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사울에게 가까이 가서 보자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있었고 창은 그의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워 있었다(7절).

 바로 눈앞에 사울이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자는 모습을 본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제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도록 허락하소서. 그를 두 번 찌를 필요도 없습니다.” 아비새의 말을 듣고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만약 그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죽어야 한다면 하나님이 직접 치셔서 죽거나 망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10절).

 그때 다윗은 사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고 했다(11절). 왜 그랬는가? 사울을 죽일 수 있었는데 죽이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확실한 증거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다윗이 그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났지만 여호와께서 그들 모두를 깊이 잠들게 하셔서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다(12절).

 십 사람의 1차 밀고 때는 사울을 용서하며 그의 겉옷자락만 베었는데 2차 밀고 때는 역시 사울을 용서하며 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만 가지고 떠났다. 죽음의 도피 생활에서 한 번 용서하고 살려준 사울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아도 또 사울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다. 보통 인내가 아니다. 누군가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하는 마음은 후퇴하지 말라. 교육적이고 전략적인 목적으로 멀리할 때도 용서하는 마음은 잃지 말라. 용서할수록 복의 마일리지가 축적된다.

< 용서의 원리 >

 다윗처럼 죽음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누구나 한 번은 용서할 수 있지만 두 번 용서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다윗은 2차 용서 때도 결정적인 순간에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 장면을 통해 교훈 받는 용서의 원리는 무엇인가?

1. 중심으로 용서하라

 다윗이 사울로부터 억울하게 쫓겨 다니면서도 마음에 큰 상처가 없었던 것은 탁월한 용서의 능력 때문이었다. 그처럼 용서의 능력이 탁월해야 마음의 상처와 한을 극복할 수 있고 건강하고 복된 인물로 준비될 수 있다. 마음의 상처와 한이 있는 사람이 용서의 능력을 깨닫고 용서를 실천하면 지구상의 많은 정신병원은 손님이 부족해서 문을 닫을 것이다. 중심으로 용서하면 수많은 정신병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용서를 쉽게 생각하고 “괜찮아. 잊어버렸어.”라고 하면서 그냥 잊어버리는 것을 용서인 줄 안다. 그러나 용서할 때는 중심으로 용서하라.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미움이 잠재된 상태에서 스스로를 공격해서 자신의 내면이나 정신이 더 병들 수 있다. 중심으로 용서해야 정신의 병도 낫고 육신의 병도 낫는다.

 한 정신분석 연구소에서는 병과 정신의 관계를 밝히려고 7가지 병을 대상으로 십 년간 연구한 후 이런 결론을 발표했다. 십이지장 궤양은 상처 받은 사람에게, 궤양성 대장염은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 천식은 보호자 없이 힘들게 사는 사람에게, 갑상선 과 기능은 두려움이 심한 사람에게 주로 생겼다. 그렇다면 이 네 가지 질병은 실패와 상처의 기억을 잊고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성도에게는 죽음조차 비극이 아닌 승리로서 역설적으로 죽음도 치유의 일종임을 확신할 때 치유 가능성이 크게 증대된다.

 신경성 피부염은 주로 육체적인 욕망을 억제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생겼다. 마음과 육신의 정결을 추구하되 육체적인 욕망 자체에 대해 너무 죄의식을 가지지 말라. 하나님이 남녀를 창조하신 것은 육체적인 욕망도 결국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뜻이다. 그 욕망을 바르고 선하게 사용할 때 기쁨과 행복도 얻고 후대의 복도 얻는다.

 고혈압과 관절염은 주로 적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겼다. 고혈압보다는 관절염 환자에게 그 적대 감정의 강도가 비교적 낮다. 사람이 마음의 상처에 집착하면 아드레날린이 과 분비된다. 그것을 해독시키지 못하면 그것이 몸에서 떠돌다가 점차 관절에 모여 관절염을 일으킨다. 결국 고혈압과 관절염 치유에는 용서라는 약이 특효약이다. 사실상 많은 육체와 정신의 병이 용서를 통해 치유 가능성이 커진다. 그처럼 인간성 회복, 인간관계 회복, 가정과 건강 회복의 핵심 요인이 용서임을 깨닫고 중심으로 용서하라.

2. 계속해서 용서하라

 다윗은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연속해서 용서했다. 그처럼 용서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용서하라. 몇 번 용서했다가 포기하는 것은 단순히 참는 것이지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면서 “내가 지난 10년 동안 참았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10년 동안 벼르고 벼른 것이지 용서한 것이 아니다.

 옛날 바리새인들에게는 이런 표어가 있었다. “두 번까지는 용서하되 그 이상 용서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용서의 폭을 크게 넓혀 예수님께 물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줄까요? 일곱 번까지 할까요?”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대단한 줄 알았을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하라(마 18:22).” 이 말은 490번까지만 용서하라는 말이 아니라 계속해서 용서하라는 말이다. 세기 시작하는 용서는 이미 용서가 아니라 복수를 미루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복수할 때 “내가 이제까지 몇 번이나 용서했는지 알아.”라고 소리친다. 용서할 때 계속해서 용서하려고 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한다.

 무협지를 보면 그 핵심 내용이 복수다. 심지어 2-3대에 걸친 복수를 통쾌하게 그린다. 그처럼 동양 문화는 용서에 인색하다. 옛날에는 반대파를 모함해 3족을 죽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쌓였던 한이 터지면서 후환을 없애려고 가족까지 죽이는 것이다. 결국 정적을 죽이고 많이 얻으면 나중에는 그 이상을 잃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불의한 정적 죽이기는 내 가족 죽이기로 귀결된다는 역사의식 및 하나님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 후환이 두려워서 모함을 두려워한다.

 개인적인 미움에 의한 사적인 복수는 늘 불행한 결말을 낳는다. 그런 동양 문화에 기독교의 용서 문화가 자리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 보복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세상 고리를 끊고 참된 복과 행복을 위해 예수님은 계속해서 용서하라고 하셨다. 세면서 용서하지 말라. 용서한 후에는 그 용서한 일을 잊어버리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계속해서 용서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나와 내 가족에게 넘치게 된다.

3. 기도하며 용서하라

 어떤 기도 제목이 응답받기를 원하면 내게 용서할 대상이 없는가를 찾아본 후 먼저 그를 용서하라. 용서가 없으면 기도응답이 막힌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원하면 용서를 통해 사람과의 관계부터 회복시키라. 사랑이 바탕이 된 믿음이 참된 믿음이다. 내면에 미움이 있으면 믿음을 잃는다. 반면에 용서와 사랑을 통해 미움을 극복하면 믿음이 커진다. 그때 기도도 능력 있는 기도가 된다.

 마가복음 11장 2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또한 주기도문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용서해야 용서받고 참된 복을 얻는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용서하기 힘들어도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신 은혜를 생각하고 남을 용서하라.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큰 은혜로 함께하실 것이다.

 용서의 의미를 가진 헬라어 아폴루오는 ‘놓아주다. 풀어주다’라는 뜻이다. 용서란 노예를 놓아 주고 풀어 주듯이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놓아 주고 풀어 주는 것이다. 용서를 통해 남을 놓아 주면 내가 놓임 받는다. 또한 용서의 의미를 가진 또 다른 헬라어 카리조마이란 ‘이유 없이 준다, 값없이 준다’라는 뜻이다. 용서할 이유를 찾으면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이 나를 이유 없이 용서하신 것처럼 나도 남을 이유 없이 용서하라.

 용서하고 화해하자고 “지금 툭 터놓고 서로 마음속에 있는 할 말을 다 해 보자.”라고 하면 싸움과 상처가 더 커질 수 있다. 서로 할 말이 얼마나 많고 서로 상처를 준 이유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 속상한 마음을 다 터놓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속상한 마음을 사랑과 용서로 내면에서 녹여 버리라. 마음속에 맺힌 것을 털어버리지 않아서 힘들다면 사람에게 말로 털어놓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로 털어놓으라. 진심으로 용서할 때 기도 응답도 이뤄지고 복도 넘치게 주어진다. 늘 용서하는 삶을 통해 더욱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