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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자기 성찰을 앞세우라

by manga0713 2023. 10. 18.

[ 강미선 : 배 ]

 

 

본문말씀 : 느헤미야 10장 28-29절

 

28 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29 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 잘못된 믿음을 버리라 >

 요새 잘못된 믿음으로 부작용이 많다. 성도가 피해야 할 잘못된 믿음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첫째, ‘비현실적인 극단적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다. 어느 날 한 입시생이 어느 대학을 지원할까 기도하던 중 우연히 성경 마태복음 7장 13절을 읽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학생은 그 말씀을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생각하고 점수가 한참 낮으면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서울대 법대를 응시했다.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니다.

 둘째, ‘지나친 체험중심적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은 거의 읽지 않고 집회만 쫓아다닌다.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종교 모험가의 체험을 말씀보다 앞세우면 겉으로는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결국 그 영혼은 파산한다. 어떤 사람은 “약 8천 번의 임상실험을 해보니까 귀신은 불신자들의 사후 영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8만 번의 체험과 실험이 있어도 성경에 없는 원리는 진리가 아니다.

 셋째,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다. 어떤 사람들은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라 하는 것을 믿음으로 오해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런 자기 신념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신념은 사실상 자기를 믿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또한 믿음을 억지로 불러일으키려고 지나친 쇼맨십을 하는 행위도 멀리해야 한다.

 넷째, ‘감정적인 신비주의적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다.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면 신비주의가 되기 쉽다. 신비주의는 겉으로는 가장 신앙적인 모습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영혼을 혼란과 교만에 빠뜨리는 가장 큰 영적 질병이 될 수 있다. 신앙생활에서 신비를 추구하는 것이 왜 나쁜 것이냐는 반론을 할 수 있지만 신비주의를 이용하는 리더십이 거의 예외 없이 나쁜 것이기에 신비주의처럼 영혼에 위험한 것은 없다.

 다섯째, ‘지나친 기복주의적인 믿음’은 잘못된 믿음이다. 믿음의 대상을 잘 잡아야 한다. 기독교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종교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믿음은 문제해결의 도구나 만사형통의 도구가 아니다. 믿어도 일시적으로 문제가 생길 때도 있고 고통을 당할 때도 있다. 죄악 많은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만사형통은 없다. 진짜 복은 만사형통의 복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루는 복이다.

< 자기 성찰을 앞세우라 >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인봉하며 결단하는 장면이 나온다. 느헤미야 10장 1-27절에는 인봉한 84명의 리더 명단이 나온다. 총독 느헤미야까지 인봉한 자의 명단에 들어갔다. 느헤미야는 평신도였지만 말씀 운동의 ‘종속적인 변수’가 아니었고 ‘주도적인 상수’였다. 본문 28-29절을 보면 리더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언약에 동참했다. 그처럼 개혁은 리더와 백성이 함께 해야 성공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자기가 빠진 개혁은 무의미하다. 모든 개혁은 자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는 자기 개혁에서 출발해야 한다. 남 탓은 최대한 줄이라. 자녀의 잘못을 자꾸 지적하면 문제는 커지고 상태는 더 나빠진다. 참된 개혁은 남 탓으로 되지 않고 회개에서 시작된다. 먼저 자신이 못나고 타락한 죄인임을 인정하라. 다윗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회개를 잘했기 때문이다. 자기 불의를 알 때 진정으로 의로울 수 있고 자기 부족을 알 때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다.

 개혁은 리더들만의 몫이 아니다. 자신도 함께 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자신이 개혁 대상이 되는 교회의 속성을 따르면서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다. 결국 교회 개혁의 요체는 자기 개혁에 있다. 어떤 교사가 동료 교사들에게 늘 “교회가 이것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하자 동료 교사들은 “당신이 먼저 개혁되어야 교회가 개혁된다.”고 지적했다. 개혁 문제에서는 늘 ‘자기 소리’보다 ‘자기 성찰’을 앞세우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