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이야기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by manga0713 2011. 12. 17.

 



이 책 또한 종로의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즘 한창 김훈 선생님의 역사소설 시리즈,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남한산성"을 읽으며 SNS에 밑줄 친 부분을 올려가며 우쭐되고 있던 차에 기막힌 제목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눈에 안 들어 올 수가 없었지요.

김훈 선생님의 존함과 말이 제 기억 속에 각인 된 것은 몇 년 전인가 모 신문에서 읽은 그 분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의견처럼 말하며,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은 세태의 안타까움을 꼬집은 것일텐데 우쭐하며 살아가던 내겐 아픔 곳을 찌르는 일침이었습니다.

그렇게 그것이 내 말인양 사기치며 살아오던 때에 신작인 "흑산"을 만났지요. 읽으려 꺼내들었는데 몇 년전에 잘난 척하며 사서 꽂아 두었던 위의 3권 묶음이 기억나 그래 이것들 먼저 읽고 선생의 목소리를 귀와 눈에 익혀 둔 다음에 읽자 했는데 이 책을 만난 것입니다.

읽다보니 도대체 이 책은 언제 나온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해서보니 2002년에 초판이 나오고 2010년에 개정판이 나왔네요.

초판의 제목이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였다고 하네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제 나이 또래 남성들에게는 '평발'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지요. '평발' = '(군)면제' ㅋㅋ 맞나요?

아들, 군대, 그가 보낼 시간들, 아들의 반대 편에 서 있을 또 다른 아들들, 그들에게 주어질 특권, 그것을 알고 한 번쯤은 바래 볼 아들, 그것을 바라보는 아버지....어렵게 낳은 아들 하나 있는 제게 아주 각별하게 다가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초판 후 10여년의 세월 동안 선생의 눈에 비쳐지고 가슴에 담겼다 이야기로 꼬집혀진 모습들이 여전한 것을 보면 인간과 그들이 모여 이루는 세태에 쌓인 두터운 그 무엇은 쉬 닦여지지 않는 것인가 봅니다.

표지에 따로 뽑아 적어 놓은 글귀,

"정의로운 연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지금 정의와 민주주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가는 이 합리주의의 정글 속에서 정의로운 언어는 쓰레기처럼 넘쳐난다."

사실 선생은 정의라는 것이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 달리 세워져가야한다는 고집쟁이들 앞에 투쟁적으로 달려들어 당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따지기 전에 그 근본을 이루는 사람과 개인, 그의 삶과 그들의 환경을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들의 점심 문제를 해결했으면, 점심조차도 먹지 못하는 그 아이들의 아침과 저녁은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그 아이들의 주말과 방학때의 삼시 세때를 어떻게 해결해 갈 것인가에 대한 이해와 이야기 나눔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촉구하시는 것과 같다고 할까요...^^

아버지가 아닌 아빠의 삶을 보내고 있는 저 개인은 내게 또 이 사회에 참 어른과 강인한 아버지의 실제가 참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아쉬워 하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안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이루고 있는 55편의 글들은 참 좋은 이야기들 입니다. 절실하며 따끔한 이야기들이고 푸근하고 정 깊은 이야기들 입니다.

여러분 10년 지난 책이라 외면마시고 꼭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이 책의 밑줄 친 부분입니다.

-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 못난 나라의 못남 속에서 결국 살아내야 한다는 운명을 긍정하는 것이다.

-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하여 더 이상 가짜 희망을 말하지 말라. 민주주의와 위기극복의 이름으로 인간의 구체성을 추상화하지 말라. 추상화된 언어의 합리성은 뻔뻔스럽다. 그 추상성이 권력의 힘이고 그 뻔뻔스러움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가고 있다.

-
여론이 사실을 몰고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갈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클린턴의 정액은 입증해주었다.

-
길은 그 위를 가는 자에게는 통로이지만, 길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풍경이다.

-
언론자유의 근본은 언론의 부자유이다. 이 부자유는 가혹한 자기검열에서 온다. 자기검열이 없는 언론은 유언(流言)이다. 언론은 당대의 사실을 당대에 말해야 한다. 당대의 사실을 당대에 말하지 않고, 한 몇 년 묵혀두었다가 비화(秘話)라고 해서 팔아먹는 것은 언론이 아니다. 언론은 풍문과 싸워야 하고 비화 없는 세상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

-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뒤로도 간다. 앞으로 가는 시간과 뒤로 가는 시간 사이에 우리는 끼여 있다. 그것이 삶의 순간들이다. 모순에 찬 삶은 그래서 여전히 신비하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김훈
출판 : 생각의나무 2007.06.22
상세보기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0) 2011.12.22
[김명호] 나는 잇는다  (0) 2011.12.19
[김훈] 남한산성  (0) 2011.12.14
[김훈] 현의 노래  (0) 2011.12.13
[김훈] 칼의 노래  (0) 201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