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 출애굽기 21장 2-6절
2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3 만일 그가 단신으로 왔으면 단신으로 나갈 것이요 장가 들었으면 그의 아내도 그와 함께 나가려니와 4 만일 상전이 그에게 아내를 주어 그의 아내가 아들이나 딸을 낳았으면 그의 아내와 그의 자식들은 상전에게 속할 것이요 그는 단신으로 나갈 것이로되 5 만일 종이 분명히 말하기를 내가 상전과 내 처자를 사랑하니 나가서 자유인이 되지 않겠노라 하면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1)재판장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의 귀를 뚫을 것이라 그는 종신토록 그 상전을 섬기리라
< 종과 관련된 율법 >
히브리인은 빚을 갚지 못했을 때나 손해 입힌 것을 배상하지 못했을 때 동족의 종이 되었다. 이방인 종은 주인의 영원한 소유로서 후손에게도 상속되었지만 히브리인 종은 일반적인 종보다는 고용된 노동자처럼 대우받았고 6년 후에는 자유를 얻었다(2절). 히브리인으로서 종이 된 사람이 만 6년이 지나고 7년째 자유를 얻는 법은 고대 어느 법전에도 없는 특별한 법이었다. 이 법은 히브리 여종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신 15:12). 물론 종으로 있는 기간 중에 희년이 되면 즉시 해방되었다.
어떻게 해방이 되는가? 종을 해방시킬 때 종이 결혼하지 않았으면 그 종은 혼자 해방되었고 종이 되기 전에 이미 결혼했으면 그때는 그 아내도 함께 종이 되었다가 남편이 해방될 때 같이 해방되었다(3절). 반면에 종이 된 후 주인으로부터 아내를 얻었을 때는 7년째에 해방되어도 그 아내와 자녀는 해방되지 못하고 혼자만 단신으로 나가야 했다(4절).
종이 혼자 나가야 할 때 종이 상전과 처자를 사랑해서 나가지 않겠다고 할 때도 있었다(5절). 그때 종은 자유를 포기하고 계속 주인의 종으로 남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남겠다고 하면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에게 가서 공증하고 그를 문이나 문설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 대고 송곳으로 그 귀를 뚫었다. 귀를 뚫는 것은 고대 근동의 관습으로 완전한 예속과 순종을 나타내는 의식이었다. 그렇게 귀를 뚫으면 그 종은 영영히 그 상전을 자발적으로 섬기는 종이 되었다(6절).
<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자발적으로 종이 되는 모습은 성도에게 있어야 할 핵심 덕목이다. 이 세상에 종이 되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고대 시대에 종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했고 결혼도 맘대로 못했다. 때로는 성적인 노리개도 되었고 주인의 갖은 학대와 노역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절대 복종만 해야 했다. 그래서 로마 시대에 최대 행운은 종으로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런 시대 상황에서 종들에게 기독교의 자유의 복음은 아주 실감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기독교의 대 자유의 복음을 받아들인 자에게 사도 바울이 승리하는 삶을 위해 권고한 말씀이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이다(갈 5:1). 그 말씀은 “대 자유를 누리며 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이 방종은 아니기에 사도 바울은 다시 도전한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 5:13).” 자유를 누리는 삶 중에 가장 고귀한 삶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종노릇하는 삶이다.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할 성도가 종노릇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의 남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주어진 자유를 잘 쓰지 못하면 그 자유는 더 이상 복된 자유가 아니다. 그래서 자유를 얻은 후에는 그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까에 대한 더 높은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런 목표를 향한 결단과 훈련이 없는 자유는 오히려 인생의 장애가 된다.
죄에서 자유를 얻었으면 그 자유로 어떻게 살까에 대한 목표를 잘 세워야 한다. 그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자유는 오히려 영혼과 사회를 급속히 망칠 수 있기에 주어진 자유로 인해 방종하지 않도록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한다. 누구의 종이 되어야 하는가? 바로 영원한 자유를 주신 주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늘 이런 진실한 고백이 있어야 한다. “주님! 주님은 저의 주인이십니다!”
히브리 사회에서 주인이 고맙고 좋아서 귀를 뚫고 자유를 포기한 종들은 주인의 영원한 종이 되긴 했지만 그때부터는 주인도 그 종을 아들처럼 대했다. 그런 종을 ‘자유종’이라고 했다. 복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며 살려면 그런 자유종의 개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왜 인간관계가 파괴되는가? 서로 종노릇하지 않고 서로 주인노릇을 하며 잡아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얼마나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종노릇했느냐?” 하는 것이 더 복된 삶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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