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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나봇의 피는 헛되지 않다

by manga0713 2023. 9. 24.

[ 프란시스코 고야 : 변덕 23번 - 먼지 한 줌 ]

 

 

본문말씀 : 열왕기상 21장 1-16절

 

... 11 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 변화된 가치관으로 살라 >

 성경은 변화 받은 사람들의 기록이다. 성경과 교회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다 변화 받은 사람들이었다. 한국 초대 교회의 유명한 부흥사인 김익두 목사는 원래 평양 시내의 유명한 깡패였다. 그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김익두는 죽었다.”라고 부고장을 보내자 그 소식을 들은 평양 상인들이 다 좋아했다. 그런데 얼마 후 김익두가 검은 옷을 입고 검은 책을 끼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다 실망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실망은 점차 기대로 바뀌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김익두가 옛날의 김익두가 아니었다. 옛날의 김익두는 매일 남을 두들겨 패며 살았는데 부고장을 돌린 후부터는 그가 남에게 맞으며 산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어느 겨울에는 한 상인이 전도하는 김익두에게 얼음물을 끼얹었다. 그때 그는 옷을 툭툭 털고 “옛날의 김익두가 죽은 것을 감사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웃으며 지나쳤다.

 그런 삶의 변화가 있도록 기도하라. “하나님! 저의 마음과 생각과 가치관과 삶에 변화가 있게 하시고 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행동하면서 가정과 교회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물의 꿈을 가지라. 한 사람이 변화되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 어두운 세상은 점차 밝아질 것이다.

< 나봇의 삶이 주는 교훈 >

 본문에는 아합 왕의 왕비 이세벨이 사악한 방법으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장면이 나온다. 아합과 이세벨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 중 하나였다. 교회적으로 아합과 이세벨 시대 같은 지금 시대에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로써 본문에 언급된 나봇의 삶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성공보다 하나님을 앞세우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은 아합의 왕궁 인근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다(1절). 아합은 그 포도원을 자신의 채소밭 정원으로 삼게 하라고 나봇에게 제안하면서 그 제안에 응하면 더 좋은 포도원을 주거나 그 값에 맞는 돈을 주겠다고 했다(2절). 아합 왕의 제안은 나봇에게는 출세와 성공의 문이 활짝 열릴 수 있는 솔깃한 제안이었다. 반대로 그 제안을 거절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봇은 성공과 출세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다.
 
 고대 왕들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취했지만 이스라엘에서는 모세의 율법이 왕권을 어느 정도 제약했다.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은 원칙적으로 땅을 사고팔 수 없었고 부득이한 경우 가까운 친족과만 사고팔 수 있었기에 나봇은 율법을 내세워 왕의 제안을 거부했다(3절). 그는 땅의 기업이 처음 각 지파에게 분배된 대로 유지되길 원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중시하고 조상의 기업을 중시해서 팔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도 중시하고 하나님이 지금 내게 주신 것도 중시하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힘써 지키려는 나봇의 신앙을 배우라. 나의 현실과 환경과 약점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 하에 주어진 것이다. 내게 주어진 지금의 현실이 어려워도 감사를 잃지 말라.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앞세우고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땀을 흘리면 하나님이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실 것이다.

2. 모함을 두려워하지 말라

 나봇이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자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하지 않았다(4절). 이세벨이 왕에게 나아와 말했다. “왕은 마음에 무슨 근심이 있어서 식사를 아니합니까?” 아합이 나봇 얘기를 하면서 그가 포도원을 내 주지 않아 그런다고 대답했다(5절). 마치 유약한 남동생이 드센 누나에게 “나봇 때문에 삐졌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 이세벨은 폭군 제사장이던 시돈 왕 엣바알의 딸로서 왕이 백성을 어떻게 다루는 지를 많이 보았기에 유약해 보이는 아합 왕을 우습게 여겼을 것이다.

 아합 왕의 말을 듣고 이세벨이 해결사처럼 말했다.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십니까? 일어나 식사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습니다(7절).” 그때 이세벨이 주저함이 없이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다고 한 것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겠다는 말이었다. 이세벨이 어떤 수단을 썼는가? 나봇을 모함해 죽이는 간계를 썼다. 그래서 아합의 이름으로 위조된 모함 편지들을 쓰고 인봉한 후 나봇과 함께 사는 성읍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냈다(8절).

 어떤 모함 편지였는가?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증언하게 한 후 그를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이라는 편지였다(9-10절). 이세벨의 뜻대로 성읍의 장로와 귀족들은 불량자 두 사람을 통해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게 하자 흥분한 무리들이 나봇을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쳐 죽였다(13절). 결국 나봇은 모함을 받고 마녀사냥을 당해 죽었다.

 살다 보면 그와 유사한 억울한 모함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런 모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최대한 의의 편에 서고 누군가가 모함을 받으면 그의 편에 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라. 군중에 휩쓸리면 어리석은 마녀사냥의 일원이 되어 남에게 돌을 던지는 일에 가담하기 쉽다. 남의 작은 흠을 큰 흠인 것처럼 과장하는 것도 모함이다. 그런 모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런 모함에 동조하지도 말라. 그것을 위해 늘 말씀과 기도를 가까이하라.

3.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라

 성읍 장로와 귀족들이 나봇을 돌로 쳐 죽인 사실을 이세벨에게 통보하자 이세벨이 아합에게 말했다. “일어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죽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합은 그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다(16절). 모든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의인 나봇을 죽인 일로 인해 아합 가문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은 불의한 일을 그냥 두고만 보시지 않고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을 믿고 손해가 되더라도 늘 의로운 편에 서라. 요즘 많은 사람들이 불의가 의를 이기는 것 같다고 하면서 믿음에 회의를 품는다. 그러나 불의의 승리는 일시적이다. 믿음의 삶이란 고난이 없는 삶이나 상실이 없는 삶이나 꺾임이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난과 상실과 꺾임이 있어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최후 승리를 확신하고 바른 길을 따라 나아가는 삶이 믿음의 삶이다.

 하나님은 내게 좋은 것을 예비하시고 그것을 주실 때 한 가지 핵심 조건을 두신다. 바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선하게 살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렇게 살면 손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해에 대한 두려움이 나의 믿음과 양심을 압도하도록 방치하지 말라. 적당히 비겁하게 살면서 편안하기보다 손해가 예상되어도 바른 길을 갈 때 그 길과 발걸음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 나봇의 피는 헛되지 않다 >

 나봇의 피는 헛되지 않았다. 그의 가족이 몰살당하며 흘린 피는 하나님을 움직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엘리야가 일어서서 아합 왕에게 가서 아합 가문에 피의 심판이 있을 것을 선포했다. 그때 아합이 겸비한 모습을 보여 잠시 심판을 면했지만 결국 얼마 후에 그의 가문은 완전히 멸절되었다. 지금 세상이 온통 아합과 이세벨이 지배한 세상 같아도 의로운 희생의 피로 인해 조만간 아합과 이세벨 세상은 끝날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은 아합과 이세벨 세력이 지배한 모습처럼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믿음이 역동성을 잃어버려서 옛날처럼 교회로 사람들이 잘 몰려들지 않는다. 그래도 낙심하지 말고 새로운 부흥을 꿈꾸라.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부흥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지금의 한국 교회의 위기를 세계로 시야를 돌리는 기회, 우주적인 하나님의 시각을 새롭게 가지는 기회로 삼으라.

 사람과 교회에 대해 너무 실망하지 말라. 사람은 신이 아니고 교회는 완벽한 곳에 아니다.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사람이나 교회에는 약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특히 지금 한국 교회가 내면이 많이 곪은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 현실을 반전시킬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응답하고 행동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기도 응답만 바라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려고 하라.

 한국 교회에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어도 낙심하지 말고 일단 내 삶에서 작은 승리를 이뤄내라. 운전하다가 화가 불끈 날 때 순간적으로 기도하고 여유와 자비와 인내로 화를 이겨내면 작은 승리를 이뤄낸 것이다. 짜증나는 일이 생길 때 순간적으로 기도하고 성령님의 생기를 마시듯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침착함과 여유를 찾으면 그것도 작은 승리다. 그런 작은 승리들이 모일 때 조만간 큰 승리의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세상이 아합과 이세벨의 세상이 된 것 같아도 절망하거나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좀 더 믿음으로 버텨내면 사탄의 목을 칠 수 있다. 지금의 어려움은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새로운 하늘을 보라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어려움이라고 믿으라. 그런 믿음을 가지고 찬란한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면 조만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찬란한 비전이 이뤄질 때가 온다. 지금의 현실이 실망스러워도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감으로 어두운 야만의 시대를 잘 극복하고 멋지게 날아오르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