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성령님 묵상 21-24편
by manga0713
2020. 8. 5.
[ 라디슬라프 자보르스키 (Ladislav Záborský) ]
본문말씀 : 유다서 1장 20-21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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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성령님 묵상 21-24편 | | 성령님 묵상(21)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삶(유 1:20-21)
기도는 지극히 높은 존재와 지극히 낮은 존재 사이의 연합이고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엄청난 간격을 메워 주는 끈이다. 기도처럼 신비한 것은 없다. 성경은 성도가 혼자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도를 위해 친히 간구해 주신다고 말씀한다(롬 8:26). 그런 의미에서 기도하는 것처럼 의미 있는 일은 없다.
어떤 때는 정확하고 의식적인 기도를 하지 못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기도라고 해서 헛된 것은 하나도 없다. 성도에게 삶의 어떤 순간에도 신적인 의미가 없거나 하나님의 인도가 펼쳐지지 않는 순간은 없는데 하물며 나의 기도가 어느 하나라도 땅에 그냥 떨어지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성령님이 나의 기도를 도우시기 때문이다.
성령님 묵상(22) 넉넉하게 공급하시는 성령님 (왕하 4:1-7)
본문에 나오는 과부가 가지고 있던 한 병 기름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 작은 것을 무시하지 말라. 작은 불꽃 하나가 큰불을 일으킨다. 예수님이 남기신 12명의 제자는 볼품없는 존재였지만 그들로부터 큰불이 일어났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흥사인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몸무게가 50kg밖에 되지 않는 왜소한 사람이었지만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성령의 불꽃이 있었기에 큰불을 일으킬 수 있었다.
큰 교회에서는 잘 불타오르지만 작은 교회에서는 잘 불타오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 큰 불길 속에서 불타오르는 것보다 작은 불길 속에서도 불타오를 수 있는 것이 위대한 것이다. 작은 곳에서 불타오르는 존재로 훈련된 사람은 어떤 환경도 극복해 낼 수 있다. 넉넉하게 공급하시는 성령님의 은혜로 작은 불길 속에서도 불타오르는 사람이 되라.
성령님 묵상(23) 성령님 안에서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라 (사 32:15-17)
성령님이 오시면 눈에 4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첫째, 눈이 달라진다. 영광스러운 가능성을 다른 차원에서 보게 된다. 둘째, 눈이 좋아진다. 찬란한 전망과 비전이 확실하게 보인다. 셋째, 눈이 높아진다. 지상의 것에 대해 매력을 느꼈던 삶이 사라지고 천국의 것을 사모하게 된다. 넷째, 눈이 빛난다. 생기 있고 활기찬 눈빛이 된다.
인생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꿈이 없는 것이다. 꿈을 가져야 똑같은 생각, 좁은 시야, 상투적인 언어, 판에 박힌 생활에 매이지 않게 된다. 꿈이 없으면 변화가 없고 변화가 없으면 썩어버리지만 성령님이 오시면 새로운 꿈과 환상이 생긴다.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라.
성령님 묵상(24) 성령님의 은사와 사랑의 은혜 (고전12:31-13:3)
어떤 사람은 초자연적인 은사에 관심이 많다. 예전에는 한국 교회에 방언의 은사에 관한 문제가 큰 논란거리를 일으켰다. 방언 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강요하지도 말고 금하지도 말라(bid not, forbid not).”라는 자세다. 방언하지 않는 사람을 방언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고 방언하는 사람을 방언하지 말라고 금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은사 문제는 성령님의 주권과 때에 맡기라.
은사의 문제보다 더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사랑의 문제다. 최고의 영성은 내게 있는 참된 사랑으로 확인된다. 기도제목이 있으면 때로는 그 기도제목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180도 다른 곳에서 사랑의 시각을 가지고 사랑의 손길을 펼쳐 보라. 그러면 생각을 초월한 방법으로 나의 기도제목이 신비하게 응답되어 있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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