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루귀20

당신은 자라고 있다 당신을 자라고 있다 자라나는 아이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이 아이가 언제 클까?’라고 자주 떠올립니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보는 아이의 조부모나, 혹은 어쩌다 한번 마주하는 사람들은 ‘이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라고 말합니다. 네. 가장 가까운 것과 가장 친밀한 것들은 사실 그 변화에 대해 절절히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장 확인하기 어려운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의 성장입니다. 당신의 어제, 당신의 그 노력은 결코 허비되지 않았습니다. [CBS 1분 묵상 20210315] 2021. 3. 15.
과연 이 기도를 들어주실까? 과연 이 기도를 들어주실까? ‘이 기도를 들어주실까?’ 기도에 앞서 우리를 사로잡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 자체가 어쩌면 기도를 ‘주문’처럼 여기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아니, 주문은 일방향의 것이자 결과가 있어야만 의미있는 것이지만, 기도는 쌍향향의 것이자 그 자체로 의미있는 자리입니다. 네. 기도를 통해 뭔가 이루어지기 보다,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를 알고, 무엇보다 그분의 마음을 알게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주심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분명 선한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CBS 1분 묵상 20210222] 2021. 2. 22.
왜이리 섭섭할까 왜이리 섭섭할까 살다보면 섭섭한 일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너에게 얼마나 잘해 줬는데”라고 운을 띄우며 그 섭섭함을 주변인들에게 피력하곤 합니다.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마음속으로라도. 다들 왜이리 이기적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 세상에 누군가에게 준 만큼 돌려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는 물에 새기고, 베푼 은혜는 돌에 새기는 존재니까요. 부모님과 나의 관계만 떠올려봐도 명확해집니다. [CBS 1분 묵상 20210206] 2021. 2. 6.
믿음은 불안이다 믿음은 불안이다 하나님은 ‘샬롬’, 즉 신적 평안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믿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평안’의 정반대인 ‘불안’에 지배당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거부하는 이 세상에 여전히 살아야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는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불안’으로 뛰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믿음. 즉 자기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넘긴다는 것은 사실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짓이니까요. 네. 믿음은 불안없음을 바라는게 아니라, 불안 너머의 참된 평안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CBS 1분 묵상 20201220] 2020. 1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