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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말들

[온라인새벽기도] 비교의식을 버리라

by manga0713 2020. 8. 21.

[ 김옥순 수녀님 성화: 동행 ]





본문말씀 : 학개 2장 1-3절

1 일곱째 달 곧 그 달 이십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라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비교의식을 버리라 (학개 2장 1-3절)

< 비교의식을 버리라 >

 <학개>에는 학개가 전한 총 4편의 하나님의 말씀이 나온다. 첫 번째 말씀은 학개 1장 1절 이후에 언급된 다리오 왕 2년 6월 1일에 선포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무관심과 나태를 질책한 말씀이다. 그 말씀을 듣고 23일이 지난 6월 24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했다.

 두 번째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본문 1절에 언급된 대로 다리오 왕 2년 7월 21일에 전해졌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한 지 약 한 달 가까이 된 시점이었다. 그 날은 7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지키는 초막절의 마지막 날인데 그 날을 이스라엘 백성은 ‘큰 날’로 여기고(요 7:37) 대성회를 가졌다. 그때는 백성들이 가장 많이 성회에 모이는데 그날 학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했다. 그 말씀은 성전 건축의 축복과 영광을 전하며 격려하는 말씀이었다.

 왜 대성회 끝 날에 백성들이 가장 많이 모였을 때 그 말씀을 전했는가?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고 한 달 가까이 되면서 또 영적으로 나태해지고 낙심되는 환경이 생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지 70년 가까이 지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웅장하고 화려한 솔로몬 성전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솔로몬 성전의 얘기를 들은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 솔로몬 성전과 비교해서 그들이 짓고 있는 성전은 아주 초라하게 보였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비교의식이다. 비교의식 때문에 실망이 생기고 부정적인 생각과 회의가 든다. 지금도 집이 작거나 교회가 작거나 수입이 적다고 실망하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 인격과 마음과 비전이 크고 영적인 키가 큰 것이다. 믿음 생활에서도 “내가 어떤 외형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모습으로 예배하는가?” 하는 것보다 “내 안에 성령 충만을 통해 헌신하는 마음과 손길이 있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존재의 철학으로 살라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법궤가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장소보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했다. 법궤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 하나님이 솔로몬 성전과 함께 지구상에서 법궤를 사라지게 한 목적 중 하나가 눈에 보이는 법궤에 연연하는 미신적인 신앙을 깨기 위해서일 가능성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고 외형에 치중해 비교하지 말라.

 외형적인 것만 가지고 비교하면 누구나 실망할 수 있다. 내면의 믿음과 인격을 갖추라. 좋은 물품은 가지지 못해도 좋은 인품을 갖추라. 소유가 많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소유가 없다고 불행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예수님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셨다면 행복하게 살고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을 잃지 말라. 왜 오늘날 많은 사람은 행복의 파랑새를 발견하지 못하고 비 맞아 추위에 떠는 참새처럼 되어버렸는가? 행복은 외적 소유에 있기보다 내적 존재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행복을 찾아 방황하며 자기 소설에 행복의 표상으로 부자, 귀족, 학자, 미인, 영웅, 예술가, 군인, 사제 등을 등장시켰지만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다. 돈과 명예가 행복을 주지 않음을 깨닫고 어느 날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을 행인들에게 뿌렸다. 그래도 행복을 발견하지 못했다. 행복의 파랑새를 향한 고민과 번뇌를 견디다 못해 그는 자살을 기도했으나 그것도 실패했다.

 어느 날 그는 들을 헤매다 묵묵히 농사짓는 가난한 농부를 보았다. 농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입술에는 연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그때 농부의 표정에서 그렇게도 찾았던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발견했다. 행복은 무엇을 추구하다가 그것을 소유하는 것에서 발견되지 않고 내가 무엇을 추구할 수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엷은 미소 속에 자리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